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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진그룹의 완주 의지는 강고하다. 기업결합이 무산되면 유력한 경쟁사를 줄일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지금까지 쓴 막대한 자문료도 매몰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거래 무산 시 더 큰 문제는 ‘원상복구’ 부담이다. 이미 받은 산업은행의 자금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부터, 그 경우 오너 일가의 경영권과 그룹의 재무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까지 셈법이 복잡해진다. 한진그룹 입장에선 그야말로 ‘무엇을 포기하든’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 결정 시점을 업무일 기준 20일 늦추겠다고 밝혔다. EC는 1단계(예비) 심사를 진행한 후 올 2월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추가 심사가 필요하다 보고 2단계(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지난 3월 심사 기한을 7월에서 8월로 연장했고, 이번에 추가로 기한을 늦췄다.
EC는 지난 5월 심사보고서(SO)에서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을 잇는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여러 슬롯을 양보하고, 국내 저가항공사(LCC)에 유럽 취항을 제안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EC는 SO에서 화물 운송 부문 경쟁 제한성 우려도 지적했는데,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을 접는 수준의 개선안(remedy)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화물 운송은 국적기가 코로나 팬데믹을 버티게 해준 효자 사업이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을 승인한 나라는 이해상충이 크지 않은 곳들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과 함께 항공산업이 가장 발달했고, 항공사 M&A에 따른 영향도 크게 받는다. 미국 법무부(DOJ)가 유럽과 보조를 맞추며 깐깐한 심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진그룹은 유럽과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난감한 상황이지만 반드시 기업결합 승인을 얻어내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팬데믹이란 극히 이례적인 상황에서 ‘국적 항공사 통합’ 대의명분이 만들어졌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같은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해외 출장 중 외신과 인터뷰에서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키겠다"며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존재를 껄끄러워 했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해당 시장을 아우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경쟁사 하나를 줄일 수 있다. 그룹은 지금까지 1000억원이 넘는 기업결합 자문 비용을 들였다. 그러나 돈과 시간 얼마를 더 쓰더라도 M&A를 완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론 훨씬 득이 된다.
한진그룹이 기업결합 승인을 얻지 못하면 이런 경제적 이익을 잃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M&A를 지원하기 위해 8000억원(유상증자 5000억원, 교환사채 3000억원)을 투입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면, 한진칼은 다시 대한항공에 자금을 지원해 그 돈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조다. 기업결합이 막히고 거래가 무산되면 지원의 명분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거래 이전의 상태로 ‘원상복구’ 해야 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
교환사채는 한진칼이 조기상환권(Call Option)을 갖는다. 일정 조건이 충족될 때 산업은행에 돈을 갚아주면 된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지분율 10.58%)은 처리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증자무효는 등기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소를 제기하는 방식으로만 주장할 수 있다. 한진칼 증자는 이미 2020년 말에 이뤄진 터라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 M&A가 무산되면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이 다시 협상 테이블을 차려 이 투자금의 상환 방안을 논의해야 할 수도 있다. 한진칼이 자사주로 다시 사들이든, 주가가 좋을 때 산업은행이 시장에서 처분하든 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지분이 사라지면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수성 부담이 커지고 재무구조나 자금 조달력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주당 7만800원에 한진칼 주식을 인수했는데 현재 한진칼 주가는 4만원대다.
항공산업은 침체기를 지나 다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고, 사정도 팬데믹 위기 때와 많이 달라졌다. 8000억원을 한진칼이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에 넣는다면 1분기말 2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절반 아래로 줄일 수 있다. 국가 항공산업 경쟁력이나 국민 편익 면에선 아시아나항공 M&A를 추진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처한 상황과는 온도차가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M&A가 무산되면 한진칼이 산업은행 투자 지분을 자사주로 사주거나 산업은행이 시장에서 파는 등 사후적으로 원상회복을 해야할 수 있다”며 “무산되면 지옥문이 열리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들은 마지막까지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산업은행도 아시아나항공 M&A 결과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 정권에서 시작했더라도 책임은 결국 이번 정부와 산업은행이 져야 한다. 어렵게 시작한 거래에서 자문사들만 등이 터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산업은행도 미국과 유럽의 심사 승인을 얻기 위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남의 나라 경쟁당국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M&A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지만 확신은 갖기 어려운 터라 언급조차 민감한 분위기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해외 심사를 받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판단이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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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7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