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바이오'는 8년 전 삼성물산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입력 23.07.19 07:00
제2의 반도체로 바이오 꼽았던 삼성그룹
로직스, 급성장 중이지만 대규모 지출 계획은 부담
핵심 개발 주체인 에피스도 여유롭지 못한 자금
개발 역량 위해 대형 M&A 필요한데…기대감 낮아
  • 삼성물산은 2015년 제일모직과 합병할 당시 바이오 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거라 공언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위시한 계열사들이 몸집을 크게 키우긴 했지만 여유롭지 못한 자금 여력에 개발 역량을 크게 끌어올리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그룹 내에서도 아직 핵심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엔 부족해 보인다.

    당시 합병 관련 투자자 설명자료에서 삼성물산은 바이오 사업 매출이 2020년 1조8000억원까지 늘어날 거라 전망했다. 삼성그룹은 2018년엔 4대 미래 성장사업에도 넣었다.

    구체적으로 항체의약품 CMO(위탁생산)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매출은 9500억원,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매출은 85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2020년 매출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조1648억원, 삼성바이오에피스가 7774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추정치보다 22.6% 높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8.5% 낮았다.

  •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노바티스 등과 위탁생산(CMO) 계약을 맺으며 수주 금액이 창사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32년까지 바이오사업에 7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4000명 이상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작년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갖춘 제4 공장을 가동하며 글로벌 1위 CMO 기업으로 올라섰다. 생산 능력은 총 42만리터(ℓ)로 늘어났다. 세계 2위인 스위스 론자의 CMO 생산능력은 약 32만ℓ 수준이다. 연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제5공장 증설을 결의하기도 했다. 총투자비는 1조9800억원, 생산능력은 18만ℓ다.

    사업 실적은 좋지만 자금 여력은 여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작년 4월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23억달러(약 2조7655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8억1250만달러는 1년, 4억3750만달러는 2년 안에 나눠서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본격화하는 제5공장 건설에는 2조원의 자금이 들어간다.

    한국신용평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2022년에는 지속적 제품 출시에 따른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증가와 연구센터 완공으로 자금소요가 완화돼 재무부담이 다소 경감됐다"며 "그러나 연구개발비용 및 재고자산 증가에 따른 운전자본 부담 등이 내재돼 있어 높아진 재무부담을 빠르게 경감시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고 밝혔다.

  • 단순히 생산 거점에 그치지 않으려면 바이오 의약품 개발 역량이 필요하다. 단번에 개발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현 시점에선 대형 M&A가 필수불가결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주체가 돼야 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금력은 여유롭지 않고 대형 딜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의존해야 하는데 역시나 여의치 않다. 아울러 삼성그룹 차원에서 성사한 마지막 대형 M&A가 7년 전 하만 인수이다 보니, 바이오 M&A도 시장에선 큰 기대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시를 보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가장 최근 신약 연구개발에 들어간 시점은 2017년이다. 적응증은 급성 췌장염으로,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신약 파이프라인이다. 2017년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공시한 신규 연구개발 진행 현황 및 향후 계획은 없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긴 했지만, 과거 삼성그룹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과 달리 그룹을 이끌어가는 주력 회사는 되지 못했다"며 "신약 개발 주축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평균 개발 기간 10년, 성공 가능성은 희박한 신약 개발에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을 투자하는 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