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병 반대했으니 배당금 토해내라"며 주주 소송, 이재용 회장 부당합병 1심 재판 대비용?
입력 23.07.20 07:00
Invest Column
일성신약, 합병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후 대법원서 삼성에 최종 승소
삼성, "합병 반대했으니 주주 아니다"라며 일성신약에 배당금 반환소송
소송가액 겨우 175억원…이재용 회장 재판 '명분쌓기용' 아니냐는 비판도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는 724억원을 비밀지급한 삼성그룹이 다른 주주인 일성신약을 상대로는 "받았던 배당금 토해내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가액이 크지 않은데다 정부-엘리엇의 국제투자분쟁(ISDS) 등으로 여론이 민감한 상황에서도 굳이 '평판 리스크'를 감내하며 소송을 진행하는데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결국 현금 반환보다는 향후 진행될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재판에 미칠 영향력이 목적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그룹의 역량 집결이 미래전략 구상이 아닌 오너의 '사법 리스크 제거'에만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한 대표적인 주주는 지분 7%를 보유한 미국의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과 약 2%를 보유한 일성신약이었다. 이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병은 성사됐다. 이에 삼성물산을 대상으로한 '합병 무효 소송'과 '주식매수청구가격 재산정 소송'이 이어졌다.

    일단 합병 무효 소송은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일성신약이 대법원까지 '주식매수가격 결정 소송'을 끌고 갔고 지난해 최종 승소, 분위기가 반전했다. 애초 주주들의 주식을 주당 5만7000원에 사들이기로 한 삼성물산은 약 6만6000원에 사들이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일성신약과 특수관계인에 300억원 정도의 차액을 더 지불했다. 여기에 더해 삼성은 7년간 소송을 이어가며 발생한 지연이자까지 물어야 했다.

    이 판결이 나온 이후 이번엔 삼성물산이 일성신약을 상대로 175억원 상당의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이후부터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확정할 때까지 일성신약이 받아간 배당금을 다시 돌려 달란 취지다. 삼성물산은 "합병을 반대한 일성신약은 주주가 아닌 채권자의 지위"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양측 변호인단의 변론은 모두 마쳤고 오는 8월 말 법원(동부지방법원)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엘리엇에는 같은 성격의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삼성물산은 "엘리엇과 진행 중인 소송은 없다"라고 밝혀왔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일성신약이 주식매수대금을 지급받은 만큼 삼성물산 측이 배당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 자체가 예상된 바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법률적인 대응과 별개로, 그룹 전반의 평판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런 소송을 끌고갈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 소송에서 삼성물산이 일성신약에 요구한 금액은 175억원에 불과하다. 삼성물산도 소송과 관련해 "해당 소송건은 재무제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힐 정도로 크지 않은 금액이다. 삼성물산 혹은 삼성그룹이라는 큰 살림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한(?) 금액임에도 불구, 이를 받아내겠다고 오랜 주주를 대상으로 새로운 소송전을 제기한 셈이다.

    반면 엘리엇에는 반대다. 삼성물산은 역시 합병을 반대한 엘리엇에게는 일성신약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주식을 매수하기로 한 '비밀합의'를 했다. 그리고 '비공개 조건'으로 700억원을 지급했다. 그만큼 이 사안에 대해서는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독 왜 일성신약을 타깃 삼아 소송을 제기했을까? 

    일성신약에 대한 괘씸죄(?)라는 해석도 있다. 과거 삼성물산 측은 일성신약이 합병에 극렬하게 반대하자 "일성신약 오너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골프장 회원권(안양베네스트)도 반납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흘러나올 정도로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해당 골프장 회원권 관리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결국 이번 소송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남아있다.

    게다가 삼성은 다른 글로벌 주주들에게는 지극히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역시 합병을 반대한 글로벌 최대 규모의 연기금의 대표급 인사는 최근 삼성그룹과의 관계에 대해  "현재 삼성그룹과 지배구조개선을 비롯한 현안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제일모직과의 합병 이후에 이와 관련한 문제로 해외 기관투자가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례는 들은 바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소송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재용 회장의 재판에 필요한 명분쌓기라는 해석이다.

    2021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될 당시 이재용 회장의 혐의는 국정농단 사태, 즉  '뇌물공여, 횡령(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혐의였다. 대법원에서 2심을 뒤집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2년6개월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또다시 재판을 시작해야 한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 주가 부양과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고자 거짓정보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고 아직 1심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외부감사법 위반) ▲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등의 혐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엘리엇의 국제중재재판 승소 소식, 그리고 삼성과 엘리엇의 합의금 지급 소식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이 건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직결돼 있고, 곧바로 이재용 회장 재판에 '근거' 로 작용할 수 있다.

    일성신약 소송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이 일성신약 등을 상대로 '주주가 아니다'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이재용 회장 재판에서도 긍정적인 결론을 유도하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지 않아도 삼성물산과 삼성그룹은  '주주를 무시한다'라는 평판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175억원을 받아야겠다" 며 시작한 주주 대상 소송전이 오로지 '현금반환'이 목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 소송을 통해 "합병에 반대한 주주에게 합당한 대금을 지불했고, 삼성 또한 부당하게(?) 지급된 대급을 반환 받았기 때문에 끝내 모든 주주들과 합리적인 (합병) 거래를 성사했다"는 식의 논리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이 아닌 '삼성그룹'에 미칠 악영향이다.

    이재용 회장의 재판은 향후 수년 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성신약의 소송도 장기전이 예상된다. 해당 소송전의 판결을 기반으로 한 일반 주주들의 소송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현재 일성신약을 향한 소송은 강선명 부사장(건설 법무팀장)이 이끄는 삼성물산 법무팀에서 맡고 있다.

    이재용 회장과 관련한 소송은 공식적으론 외부 변호인단(김앤장·태평양 등)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 가운데 판사·검사 출신 임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삼성전자 법무실의 역할도 주목해 봐야한다. 현재 이 회장의 관련 소송은 법무실 소속 엄대현 부사장이 전반적인 조율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법무실은 김수목 사장(법무실장·사법연수원19기·검사)과, 엄대현 부사장(송무팀장·사법연수원21기·검사), 김경환 부사장(법무팀장·사법연수원 25기·판사) 등이 핵심으로 꼽힌다. 김수목 사장과 엄대현 부사장은 과거 미전실 해체 당시 성열우 전 사장(미전실 법무팀장)과 함께 삼성을 떠난 후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이재용 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사다. 엄대현 부사장이 2018년 삼성전자에 먼저 복귀 했고, 김수목 사장은 2020년 삼성전자에 돌아온 이후 약 1년 만에 사장 승진 인사에 포함됐다.

    이미 그간의 대응과정에서도 삼성그룹은 거의 매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론의 비난을 받아왔다. "필요할 때만 수박 돌리며 손 벌린다", "결국에는 힘있는 주주만 우대한다", "소액주주들은 차별한다"는 인식이 어느새 공고해졌다.

    삼성은 오너의 사법리스크를 벗겨내기 위해 무리한 전략들을 남발하는 과정을 통해, 자칫 유무형의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단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삼성은 아직 정공법(正攻法)을 익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