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은 마중물일뿐'…보험사 M&A '본 게임' 앞두고 채비 갖추는 인수후보들
입력 23.07.20 07:00
하나 이어 우리·한투지주까지…'새 주인' 대열 합류
中 다자그룹, 7월 방한 예정…매각 측도 전략 고심
손보사 M&A도 꿈틀…한화손보·신한금융 행보 주목
IFRS 17·K-ICS發 '고무줄' 밸류 등 변수 적지 않은데
곧 드러날 상반기 성적표…'본게임' 앞두고 IB도 분주
  • 하나금융지주의 KDB생명 인수 우선 협상자 선정은 하반기 본격화할 보험사 인수합병(M&A)의 전조 격으로 통한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장이 선 김에 팔아야 하는 쪽 고심이 큰데 하나·우리금융 외 한국투자금융지주까지 인수 후보군도 늘고 있다. 팔고 사는 양측 모두가 협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속속 채비를 갖추는 분위기다. 

    일단 KDB생명이 시선을 끌었으나 이후 드러날 거래를 돋보이게 할 극적 장치인 '맥거핀'이나 거래의 시작을 알리는 '마중물'에 가깝단 평이다. 아직 기업 가치 평가에 변수가 많아 보험업계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이 어렵다. 자문에 나선 투자은행(IB) 측에서도 세부 전략을 둔 조율이 이어질 전망이다. 

    협상장 모습 드러내기 전인 잠재 후보군도 산적

    최근 하나금융지주의 KDB생명 본입찰 참여는 M&A 시장에 일종의 반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나금융의 KDB생명 인수 의지가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 까닭이다. 그간 하나금융이 살펴 온 후보군에 비해 인수 효과도 뚜렷하지 않고 이사회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래를 통과시켜야 하는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하나금융 역시 싼값에 나온 매물을 찬찬히 뜯어보겠다는 정도 입장으로 파악된다. 하나금융은 그간 내부적으로 ABL생명을 스터디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자연히 다른 보험사 등 잠재 매물을 쥔 측에서도 행보가 바빠지는 분위기다. 하나금융이 인수 의지나 여력 측면에서 놓치기 어려운 핵심 원매자로 꼽히는 탓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ABL생명과 동양생명 대주주인 중국 다자그룹(옛 안방보험)이 이달 중 방한 예정이다. 다자그룹은 연초 크레디트스위스(CS)를 주관사로 선정해 ABL생명 매각을 공식화한 상태다. 동양생명까지 합쳐 패키지 매물로 내놓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만약 하나금융이 패키지를 인수해 하나생명과 합치면 업계 5위권의 새로운 생보사가 탄생한다.

    하나금융 외 우리금융도 비(非)은행 강화 목적 M&A 전략에 변화가 감지된다. 우리금융 역시 하나금융과 마찬가지로 ABL생명을 살펴봤지만 불확실한 K-ICS 비율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KB나 신한금융이 기존 인수한 생보사와의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이 한창인 터라 우리금융이 생보사 인수로 방향을 틀 경우 하나금융과 함께 큰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도 고민이 한창이나 뚜렷한 방향을 잡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M&A 성과가 시급하지만 1순위로 내세운 증권업에서 마땅한 매물이 없다.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나 이중레버리지비율 등 여력을 고려하면 차선인 보험사 인수를 섣불리 공식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ABL생명을 들여다보자 우리금융도 관심을 가졌지만 아직은 인수 의지가 불확실한 모습"이라며 "당분간 증권사 M&A가 힘들 거란 시각이 짙으니 생보사 인수로 방향을 트는 게 낫다는 조언이 전해지고 있지만, 3년 임기 내 두 마리 토끼를 잡긴 힘들어 결정에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역시 ABL생명 매각전에 모습을 보이며 생보사 인수 채비를 갖추고 있다. 카카오뱅크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 등을 투입해 증권업 중심인 그룹 자산 구조를 확대하는 데 쓰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이나 NH, 메리츠금융 등 경쟁사 대부분이 보험 계열사 보유 자산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영업 및 성장 전략을 펼칠 수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선 지난해 메리츠증권이 유일하게 1조원대 실적을 올린 것도 위기감을 부추겼을 것으로 내다본다. 메리츠증권은 다른 대형 증권사와 달리 부동산금융에 특화한 영업 구조지만 가파르게 체급을 키우고 있다. 메리츠증권 내부에서도 보험 계열사 자산이 이 같은 전략의 열쇠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연초 롯데그룹에 대한 두자릿수 이자율 대출 역시 메리츠증권이 앞단에서 구조를 짜고 그룹 자산을 가용하는 형태였다"라며 "메리츠증권이 부동산 호황 때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선 것이나, 침체 직전 선제적으로 위험 자산을 정리한 것도 보험 계열사 덕이 적지 않다 보니 한국투자금융지주에서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했다. 

  • 손보사 M&A도 꿈틀…K-ICS 등 변수는 여전히 많아

    손해보험업권도 꿈틀대고 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보유한 롯데손해보험이나 MG손해보험 등 잠재 매물 외에도 한화손해보험이 깜짝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채비를 갖추고 있는 '새 주인'들이 늘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평이다. 

    하나금융은 당초 생명보험에선 M&A를 통한 외형 성장을, 손해보험에선 자체 역량 강화를 꾀해왔지만 현재 손보사 M&A까지 기회를 열어두고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손해보험은 1분기 8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손보사 매물을 쥔 측에서는 은행지주 인수 의지가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이 생보사에 이어 손보사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신한금융의 의중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손해보험 부문 내부 성장 전략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보사에 비해 매물이 적어 손 놓고 있다간 재차 실기 우려가 불거질 수 있다. 

    보험사 M&A 시장의 막은 올라갔으나 아직은 결과를 예상하기 이르단 시각이 지배적이다. IFRS 17 적용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이로 인한 혼선 역시 상당한 까닭이다. 업계 전반 자본규모가 늘어난 상황에 계약서비스마진(CSM)에 대한 불신으로 팔고 사는 양측의 가격 눈높이가 크게 벌어졌다. 금융감독원에서 새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각사 K-ICS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잠재 자본확충 필요성을 따지기도 어려워졌다. 

    당장은 보험사 가치가 '고무줄 밸류에이션'에 비유되지만 이 역시 인수전이 치열해질 경우 자연스럽게 눈높이가 조정될 수도 있다. 하반기 실적 발표 일정을 앞둔 데다 당국도 연내 가이드라인 작업을 마쳐야 한다. 

    M&A 시장 한 관계자는 "IFRS 17로 보험업계 환경 자체가 크게 바뀐 데다 협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원매자나 매물도 많아 아직은 지형 변화를 전망하기 어렵다"라며 "올 하반기 중 국내 보험사 M&A가 본격화할 전망인 만큼 매각·인수 후보군도 채비를 갖추고 있고 IB 업계도 양자를 오가며 물밑 협상을 진행하느라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