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고, 소비 꺾이고…'분리 경영' vs '통합 관리' 유통 3사 누가 웃을까
입력 23.07.20 07:00
현대百, 단일 지주체제 전환…"현 시점에서 사업적으로 적절"
백화점 효과 못보는 이마트, 재무부담 별개로 투자 성과도 불투명
롯데쇼핑, 구조조정 효과 나타나지만 유통업계 존재감은 흐릿
  •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 공룡들은 코로나 팬데믹에 한 숨 돌리려나 했는데 전반적인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과 소비 둔화로 다시 한 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의 최근 1년치 주가 추이를 보면 거의 역대급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예전 같으면 평범하게 누렸어야 할 '여름 특수'도 체감하지 못한 채 남은 하반기는 어떻게 보낼지, 또 내년 경영 전략은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이 깊다. 업종별로 처한 상황은 제각각인데 이를 통합 관리할지, 분리 경영할지 그룹별로 엇갈리고 있다. 다만 현 상황에선 이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서로 쪼개지지 말고 몸집을 키워 버텨라. 그럼 다시 기회는 온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에 재시동을 걸었다. 지난 2월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를 각각 인적분할 해 두 개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 했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실패, 현대그린푸드만 인적분할에 성공해 현대지에프홀딩스라는 반쪽자리 지주사가 만들어졌다. 현대백화점그룹은 5개월 만에 새로운 그림을 꺼내 들었다. 현대지에프홀딩스가 현대백화점까지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하면서 그룹의 단일 지주사로 등극하게 된다. 이에 현대백화점그룹 지배구조는 '정지선 회장·정교선 부회장→현대지에프홀딩스→현대백화점·현대그린푸드' 구조로 전환된다.

    앞으로 있을 주주 가치 문제는 차치하고, 사업적으로만 따져보면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당분간 계열 분리 가능성은 사라지면서 그룹의 '볼륨'이 더 작아질 여지를 없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시장의 헤게모니가 바뀌고 있는 와중에 현대백화점처럼 여타 그룹 대비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변화하지 않은 경우 그룹이 쪼개지면 버텨낼 체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일 지주사 체제여야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게 이뤄지고, 그래야 계열사 간 시너지가 더 극대화할 수 있기에 현 시점에서 단일 지주사 체제를 빠르게 선택한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신세계그룹, 롯데쇼핑처럼 온라인에 큰 방점을 찍지 않았지만, '더현대'의 성공에서 보듯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충분히 보여줬다는 평가는 받아왔다. 차후 투자를 더 늘릴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룹의 덩치를 더 키워야 '레버리지'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지누스 인수에 차입 부담이 커졌고 실적 역시 부진했지만 백화점 부분의 실적 개선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신세계그룹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나마 신세계백화점은 선방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 수준의 영업이익을 회복했는데 명품 등 고가품 수요가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호텔 부문의 영업적자 폭도 줄어드는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백화점 업계가 그러하듯 명품 소비가 예전같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 실적 개선세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사실 신세계그룹의 더 큰 문제는 이마트다. 백화점과 분리되면서 부진한 성적표가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 1분기엔 쿠팡이 연결기준 매출에서 처음으로 이마트를 제쳤다. 이에 유통업계에선 이 장면이 어떻게 기억될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마트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5년간 그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유통업계가 힘든 와중에도 지마켓 인수, 스타벅스커피코리아(SCK컴퍼니) 인수 등에 5조원을 투자하며 쉴 틈 없는 인수합병(M&A) 행보를 보여줬다. 다만 그 성과가 나기는커녕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형마트 업황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데 지마켓을 필두로 한 온라인 부문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영업적자 폭을 키웠다. 믿었던 스타벅스도 예전 같지 않은 실적으로 인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보유자산 활용, 외부투자 유치, 신종자본증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고는 있지만, 재무부담을 크게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일련의 투자들이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유통 시장의 경쟁 강도와 환경 변화를 감안한다면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신세계그룹은 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이마트·신세계백화점·면세점·SSG닷컴·G마켓·스타벅스 등 핵심 계열사 혜택을 통합한 유료 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을 내놨다. 충성 고객에게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신세계만의 '유니버스'가 대대적인 국면 전환 카드로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와 신세계는 그룹으로 묶여있긴 하지만 사실상 분리 경영을 하고 있다보니 유니버스 클럽은 이도저도 아닌, 급하게 내놓은 미봉책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에서도 사실상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나 실적 부진의 상쇄효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데 모두 예견됐던 결과"라고 전했다.

    반대로 롯데쇼핑은 큰 지붕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이다. 온라인 부문에서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고, 하이마트 부진과 홈쇼핑의 사업 환경 악화는 수익성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다만 백화점 부문이 실적 개선을 했고, 할인점 및 슈퍼 부문은 부진 점포 정리 등 구조조정 성과가 나오고 있다. 영화상영업 부문도 작년엔 흑자 전환하면서 실적 부진이 상쇄됐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에서도 롯데쇼핑은 피해갔다. 시장에서도 롯데쇼핑의 '혹독한' 구조조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온라인에서의 치킨게임을 하지 않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새로운 걸 하지 않은 게 한 수"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고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롯데하이마트, 코리아세븐, 한샘 등 과거부터 최근까지 M&A로 편입한 유통 계열사들이 실적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만 각인시켰을뿐 유통업계에서 '롯데'의 존재감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은 중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유통 시장에선 롯데쇼핑을 제쳐버린 채 '쿠팡 vs 이마트' 구도만 강조하고 있다. 유통 시장에서 헤게모니 자체를 잃게 된다면 롯데그룹의 한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1~2년 동안은 유통군 내에서 각 계열사 별로 확장하는 것, 그 중에서도 온라인에 집중하는 것이 트렌드였다면, 지금은 체력을 다질 때라고 시장 참여자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쿠팡의 성장 속에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은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확장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내수 시장이라는 한계가 있기에 이들의 성장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외로 다시 나가는 것도 지금의 재무 상태를 감안하면 여의치 않고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다. 소비가 바닥을 치면 다시 레버리지를 일으켜야 할 기회가 올 것인만큼 지금은 큰 지붕 아래에서 버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