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합병 무산 가능성…지금이 에어부산 분리매각 적기?
입력 23.08.21 07:00
취재노트
에어부산 분리매각, 묘한 기류속에 다시 재부각
합병 무산 시 '아시아나'와 '산은'부터 살길 찾아야
지역에선 통합LCC 무산되면 에어부산이라도 인수하려
실현가능성ㆍ투자자 확보는 별개문제…정무적 판단 따를듯
  • 해외 경쟁 당국의 반대로 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산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에어부산 분리매각안이 ‘플랜B’ 중 하나로 스멀스멀 다시 거론되고 있다. 부산시 정치권과 지역 상공업계를 중심으로 소위 ‘부산 컨소시엄’을 구성, 에어부산을 인수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과거에는 ‘찻잔 속 태풍’으로 취급받던 분리매각 방안이었지만 최근 여러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묘한(?)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합병이 무산되면 제3자 매각 또는 자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KDB산업은행은 합병 무산에 따른 비난 여론을 감안, '뭐라도 하는' 시늉을 보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그간 '통합 LCC' (대한항공 계열 진에어+아시아나 계열 에어부산ㆍ에어서울)의 본사 부산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던 부산시와 지역 민심에서도 '세컨 플랜'으로 에어부산 인수라도 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부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부산 상공업계는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에게 직접 에어부산 인수 의사를 전달했다. 아시아나가 에어부산을 분리 매각하면, 지역상공인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를 인수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대형 항공사 합병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에 배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항공업계에선 통합 항공사 출범이 요원해졌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미국 법무부(DOJ)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이하 EC) 등 해외 경쟁 당국이 양사 합병에 대해 꾸준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에 아시아나가 보유한 여객 및 화물 노선을 분배하려고 시도했다. 티웨이항공에 유럽 여객ㆍ화물 노선을, 에어프레미아에 미주 노선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두 LCC(저비용항공사)의 역량이 부족할 것을 고려해, 여객기 및 화물기도 저가에 임대하고 해당 항공기의 유지 보수 및 정비사업(MRO)까지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티웨이에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 전체를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EC 측에서 ‘더 큰 항공사’를 요구하면서 해당 안을 반려하자 모든 합병안이 현재 ‘올 스톱’됐다. EC와 DOJ에 지속적으로 자료를 보내고 대미(對美) 로비 활동을 전개하는 등 나름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3년에 걸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인수합병 성사 여부는 결국 미궁 속에 빠졌다. 내부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도 감돈다.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자 아시아나항공 ‘제3자 매각설’(플랜B)에 불이 지펴졌다. 산업은행이 외부 컨설팅 업체에 '아시아나 안정화 방안'을 의뢰하면서, 아시아나의 미래 사업 계획과 자금수지를 점검한 것이다. 산은 측은 “플랜B는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아시아나와 채권단이 향후 잠재 인수자들이 봤을 때 문제가 없도록 재무 점검을 시행했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두고 다시 한번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 한번씩 아시아나와 인연을 맺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이나 애경그룹의 입장도 애매해졌다. 한화그룹이 지난 2017년 에어로케이항공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2019년(아시아나)과 올해(플라이강원) 인수설에 간혹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재무부담ㆍ단기간의 과도한 M&Aㆍ특혜 논란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대기업 오너들이 '건설', '금융'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항공'이라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렇다보니 에어부산의 창립 발기인이자 약 1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에어부산을 인수하자'라는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분리매각을 통한 인수만이 에어부산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저점일 때 하루라도 빨리 에어부산을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에 가깝다. 인수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보다 ‘먼저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일본 관광 붐으로 에어부산의 실적은 타 LCC 중에서도 가장 크게 개선됐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983억원, 영업이익 339억원, 순이익은 155억원이다. 매출액은 지난해 2분기보다 13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코로나19 이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2019년 1분기와 비교해도 517% 급증했다. 

    경쟁사와 달리 인력과 기타 지출을 줄여 허리띠를 졸라매 나온 성적이지만, 시가총액 대비 양호한 실적이라는 덴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에어부산의 시가총액은 3000억원대로, 경쟁사인 제주항공(1조원대), 티웨이항공(5000억원대), 진에어(7000억원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는 “에어부산의 주가는 2023년 예상 실적을 반영한 주가수익비율(PER)의 5.6배 수준으로 저평가 상태”라고 분석했다.

    부산 상공계에서는 에어부산을 아시아나에서 분리매각시켜 거점항공사를 확보, 부산엑스포 유치와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30년 개항하는 가덕신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최소한 가덕신공항을 모항(母港)으로 쓰는 지역 항공사는 확실히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에어부산의 부산지역 기업 지분율은 16% 수준으로, 산업은행 지분 42%를 추가로 인수하려면 대략 2000억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이강원 매각가로 고려된 1000억원의 2배 밖에 되지 않는 합리적인 금액이다. 항공업계에선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서 줄 ‘앵커 인수사’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정작 이 자금을 대고 나설 지역 기업을 찾아내는 일은 또 별개 문제다. 

    산업은행 입장은 더 복잡하다. 당장 에어부산 분리매각은 "아시아나항공 덩치를 줄여줘 원매자 부담을 줄인다"라는 명분 정도는 취할 수 있다. 하나라도 살리든가, 쪼개서라도 팔아서 자본을 유치하거나 재무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라는 논리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면피성' 대안이라는 비난도 불가피하다. 결국 합병이 무산되니 에어부산이나 내놓는다는 비판이 나올 상황. 근본적으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산으로 "대규모 혈세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도와줬다"는 비난부터 감내해야 한다. 

    결과는 내년 상반기 총선을 앞둔 정치권과 부산시, 그리고 여당과 정부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부산지역 민심 잡기 과정에서 '산은 본사 부산 이전'이라는 테마만 '소재'로 쓰고 있지만, 총선 시기가 다가올수록 통합 LCC 혹은 에어부산 등을 새로운 소재로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부산시 정치권 원로는 "아직 대한항공과 산은 등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통합 본사 유치가 실패한다면 에어부산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의견이 모이고는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에어부산 분리매각 여부는 정치적 관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