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을 끝까지 강행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입력 23.09.05 07:00
국내 기업 3사, 자금력 부족에 시너지도 의문
벌써부터 한진해운 사태 재현될까 우려 시선도
현 정부 첫 과업, 졸속 매각·특혜 잡음 없어야
멈추기 어려운 산은, 결국 정부 정책판단 중요
  • HMM 인수 후보는 하림그룹, 동원그룹, LX그룹 등 국내 기업으로 좁혀졌다. 글로벌 5위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나 유일한 국적 원양선사를 해외에 넘겨선 안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본입찰적격후보(숏리스트)에서 제외됐다.

    국내 기업 3파전으로 진행될 HMM 매각에 걱정어린 시선이 많다. 해외 매각 우려는 사라졌으나 이들 기업이 HMM을 감당할 역량이 있느냐 하는 물음은 여전하다. 저마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겠지만 대규모 차입금과 불확실한 해운 업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새우와 고래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라도 인수 후보들의 체급이 HMM보다 작은 게 사실이다.

    하림그룹은 세 곳 중 가장 준비가 잘 돼 있다. 조단위 자체 자금에 더해 재무적투자자(FI), 브릿지론, 인수금융 등 개략적인 인수 구상도 마쳤다. 팬오션 인수 성공 경험이 있지만 벌크선 위주의 팬오션과 컨테이너선 위주의 HMM을 동일 선상에 두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하림그룹의 주력 사업과 컨테이너 사업간 접점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동원그룹의 반기말 현금성자산은 5000억원에 그친다. 수천억원 규모의 맥도날드 사업권 인수도 깐깐하게 따질만큼 보수적이다. 동원로엑스,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 등 물류 관련 자회사와의 시너지 효과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합산 매출은 겨우 1조원을 넘어 HMM과 협업을 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LX그룹은 범 LG가 물량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후보보다 낫다. 그러나 자금 여력은 부족하다. 앞단에 선 LX인터내셔널은 조단위 현금성 자산이 있지만 이 중 실제 지분투자금(Equity)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5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이란 평가다. 작년 반기 10조원이던 매출은 올해 반기 7조1400억원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거의 반토막났다. 인수 의지가 크지 않고, HMM을 살펴 보는 데 의의를 둘 것이란 시선이 있다.

    세 기업이 진지하게 HMM 인수를 원한다 해도 몸값을 마련하기 만만치 않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보유 주식과 앞으로 전환될 주식의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금액은 6조~7조원 사이를 오간다. 작게는 4조원, 많게는 6조원 이상의 차입성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 경우 순수 이자만 수백억원에 달한다. 시너지 효과는 흐릿하지만 재무 부담은 명확하다.

    컨테이너 사업이 하강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남의 돈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며 뒤안길로 사라진 그룹이 적지 않았다. 팬데믹 시기 물류 대란을 겪은 한 대기업은 HMM 인수 효과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호황기가 끝나면 HMM이 골칫거리가 돼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세계 경제가 작년 말처럼 불안정한 상황은 아니지만 불안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는 시선도 많다. HMM 인수 후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 중국으로 원양 선사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중국 부진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드는 것도 반갑지 않다는 평가다.

    인수자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해운산업이다. 보수정권은 한진해운 파산이라는 원죄를 지고 있다. 한진그룹의 지원과 대주주의 고통 분담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한진해운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다분히 감정적이고 근시안적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많다. 그 결과로 국가의 해운 경쟁력이 추락했고, 수 년간 막대한 지원 끝에야 겨우 HMM의 활약 기반이 만들어졌다.

    HMM을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올리는 것이 정부와 산업은행의 마지막 과제인데, 굴지의 대기업들조차 실적 부진과 높은 몸값 부담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적 원양선사를 인수 자금의 몇 분의 일조차 마련하기 버거운 기업들에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냐는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수자와 HMM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정부의 처리 부담은 곱절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고 자금 부담을 감내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기업에 국가 기간산업을 넘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인수 후보들이 HMM을 사서 재계 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도 무모하다”고 말했다.

    인수후보들은 HMM의 현금을 활용해 재무 부담을 줄이는 안을 생각하고 있다. 회사를 합병해 차입금 부담을 HMM에 넘기거나, HMM의 현금을 배당받아 차입금을 줄이는 식이다. 다만 이런 방식은 ‘무자본 M&A와 무엇이 다르냐’ 혹은 ‘개인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인수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국가적 지원의 결실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는 기업에 몰아주는 것은 어떻게 봐도 특혜라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과 간언이 이어지며 정부 고위층에서도 HMM 매각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에서 주도한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달리 HMM 매각은 이번 정부에서 시작한 첫 구조조정 과업이란 상징성이 있다. 매각 완수보다도 해외 매각, 부실 매각 등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이 HMM 매각을 자의로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전력의 부진으로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커진 터라, 위험가중치가 높은 주식을 처분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결국은 정부가 산업은행에 어떤 신호를 주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부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하거나 방침이 정해진 것은 아닌 분위기로 전해진다. 최상목 경제수석과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서울대 82학번 동기로 의견 조율은 원활히 이뤄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의 상황을 감안해 HMM 처분 방향을 달리 정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처음부터 산업은행은 HMM을 빨리 매각하길 바랐지만, 해양진흥공사는 해운정책적 고려를 우선시하는 등 입장이 미묘하게 달랐다. 민간에 HMM을 팔기보다는 산업은행 지분을 해양진흥공사에 넘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HMM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해운 정책을 안정적으로 펼치는 데도 용이해진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국가 자산인 HMM을 자본력이 없는 회사에 넘기는 것은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고, 국가 입장에서도 무슨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산업은행의 자본비율 관리가 어려워 HMM 지분을 꼭 팔아야 한다면 해양진흥공사에 넘기는 방안도 고려할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