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向 HBM 맞붙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D램 점유율 경쟁 새 국면
입력 23.09.05 07:00
2분기 SK하이닉스-삼성전자 D램 점유율 격차 단 '6%P'
발등 불 떨어진 삼성전자, 엔비디아 HBM 공급계약 체결
시장은 향후 양사 엔비디아 공급·D램 시장 점유율 주목
메모리도 이제는 '수주전'…HBM 후 삼성 전략 복잡성 ↑
  • 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일류주의, 일등주의, 제일주의 등 '최고의 최고'를 추구하던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글로벌 기업간 경쟁 강도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는데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인베스트조선은 시장 참여자들과 함께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미래를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둘러싼 격전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 기존 단일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의 자리싸움이 본격화는 가운데 시장은 향후 양사의 엔비디아 내 HBM 공급 점유율과 D램 시장점유율 추이를 유심히 지켜볼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일종의 '마지노선'을 지켜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향후 3사의 협력 구도를 두고 메모리 시장에서 양사가 수주전을 펼치는 이례적 광경이 예고된다. 

    지난 3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분기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에서 2위(31.9%)를 기록하며 1위 삼성전자(38.2%)와의 격차를 6.3%포인트까지 좁힌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공급 중인 HBM3를 내세워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는 구도가 연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2분기 D램 매출액은 전 분기보다 49% 증가한 34억달러(원화 약 4조4800억원)로 집계된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41억달러(원화 약 5조4000억원)로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 들어 시장 재고가 쌓이며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오직 엔비디아의 AI 칩만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전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4분기부터 엔비디아에 4세대 제품인 HBM3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엔비디아 공급 물량을 뺏어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협력 구도를 비집고 들어간 점은 의미가 크다"라며 "이제부터 양사의 엔비디아 내 공급 점유율을 둔 경쟁이 본격화하게 될 전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은 시선은 이미 3분기 이후 D램 시장 판세로 이동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현재 대만 TSMC의 CoWoS(칩온웨이퍼온섭스트레이트) 공정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을 가늠하고 있다. 해당 공정은 그래픽카드(GPU)와 같은 로직 반도체와 HBM을 하나의 완제품으로 집적하는 패키징 기술로 TSMC가 독점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TSMC의 여력에 따라 서버 및 D램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지배력 변화가 드러나는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TSMC는 엔비디아 H100의 폭발적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CoWoS 공정 생산능력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아직까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3를 단일 공급하고 있는 만큼 3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 격차는 더 줄어들 여지가 있는 셈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감산 참여에 따른 DDR4 재고 축소와 DDR5 전환이 HBM 시장 개화와 맞물려 있어 단정은 어렵지만 3분기 양사 격차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라며 "엔비디아의 AI칩이 삼성전자에 달갑지 않은 D램 시장의 이례적 판세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내 경쟁 구도 역시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선 모양새지만 엔비디아는 이미 지난 8월 차세대 제품인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 양산 계획을 내놨다. 해당 칩에는 SK하이닉스의 HBM3E(5세대)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연내 HBM3P 샘플을 고객사에 제공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공급 계약까지 이어질지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형 고객사를 두고 수주전을 펼치게 됐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 경쟁과는 다른 양상이다. AI 칩 시장에서 팹리스-메모리 공급사 협력 구도에 따라 기존 시장 질서가 재편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로선 삼성전자가 메모리 수익성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엔비디아와의 협력 구도를 공고히 하는 것만으로도 이변을 꾀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HBM 시장에서도 기존 메모리 시장에서와 동일한 수준의 리더십을 확보해야 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메모리 시장에서의 확고부동한 1등 지위가 파운드리(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추격전의 재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까닭이다. 회로 선폭 미세화(전공정)에서 TSMC와 격차를 거의 좁혀낸 참에 후공정 패키징에서 재차 밀려난 구도라 HBM에서부터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협력이 TSMC와 파운드리에서 경쟁하던 삼성전자를 메모리 수성전으로 끌어내린 형국"이라며 "HBM 이후 메모리 경쟁 구도가 바뀌면서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추격전을 이어가기 위한 변수도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