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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축소 국면에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캐피탈(VC)만큼이나 '곳간'이 넉넉한 VC도 고민이 크다. 소진해야 할 미집행 약정액(드라이파우더)은 많은데 투자할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라면 '금기시' 되던 구주 매출도 받아줘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스타트업 A는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이 중 창업자 보유 지분의 약 20%가 구주 매출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200억원 규모의 딜 클로징을 앞둔 스타트업 B도 창업자가 보유 지분 약 10%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VC는 구주 매출을 받는 상황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구주는 신주보다 할인(디스카운트)받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기 때문에, 해당 기업이 추후 '대박'을 터뜨릴 경우 출자자(LP)도 만족할 수 있다. 반대로 스타트업이 '쪽박'을 찰 경우 LP의 항의가 거셀 가능성이 크다. 블라인드 펀드에서 자금 집행이 이뤄져 LP는 투자 과정을 모르다가 막상 결과를 까보니 '금기시' 되는 투자로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특히, VC 시장은 정부기관이 LP로 많이 참여하다 보니, 결국 '나랏돈'이 스타트업 대표로 직접 흘러간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다.
VC가 스타트업과 시리즈 투자를 검토할 때 협상력이 열위인 상황도 한몫한다.
최근 VC는 스타트업과 투자자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 시각 차이가 크다 보니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VC 업계에 따르면 여전히 스타트업이 밸류 '욕심'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VC가 수익성이 좋은 기업을 찾아도, 현금이 당장 급하지 않은 창업자는 구주 매출을 받아주지 않으면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식이다.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해야 하는 VC는 '울며 겨자먹기'로 스타트업의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드라이파우더 규모는 약 12조원으로 작년 동기(10조원) 대비 약 20% 증가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대표가 본인 회사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자하며 본인 인생을 걸었나를 주요 투자 요건으로 판단한다"며 "대표가 본인 지분을 털고 나오는 걸 보면, 대표부터 본인 회사에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 같아 투자하기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 밝혔다.
다른 VC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망하면 투자자와 창업자가 함께 손실을 보는 게 VC 업계에서 정상인데, 투자자의 손실로 창업자의 엑시트를 도와주는 모양새는 '도덕적 해이'로 보인다"고 전했다.
창업자 보유 지분 20% 처분한 경우도
정부 출자금이 창업자 주머니로 간다는 비판
드라이파우더 많은데, 투자할 곳은 안 보여
VC "엑시트 안 되면 투자 안 받겠다는데 어쩌나"
정부 출자금이 창업자 주머니로 간다는 비판
드라이파우더 많은데, 투자할 곳은 안 보여
VC "엑시트 안 되면 투자 안 받겠다는데 어쩌나"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9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