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TV는 'SW 플랫폼' 사업 확장에 적합한 제품일까
입력 23.09.21 07:00
취재노트
아마존·구글도 재미 못 본 '가전'에서 HW·SW 통합
LG전자, TV에 깔린 OS 플랫폼 삼아 SW 매출 겨냥
성공시 기업가치 수직상승…애플 대표적 성공 사례
스마트TV가 SW 매출에 적합한 제품인진 의문 여전
  • 때는 지난 2019년 12월. 아마존과 구글, 애플은 지그비연합(Zigbee Alliance)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그비는 사물인터넷(IoT) 표준 확립을 위한 기업 연합체다. 당시 시장에선 이를 '공룡들도 각자 IoT 생태계를 꾸리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결과물은 없었고, 현재 시장에서 IoT는 한때의 테마로 잊힌 상태다. 

    IoT 테마가 저문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존이나 구글같은 빅테크조차 기기(HW)와 소프트웨어(SW) 플랫폼을 통합한 생태계 구축에 실패한 탓이란 분석이 많다. SW에 강점이 있는 빅테크들은 생태계를 구축할 마땅한 기기 시장이 없었고, 기기 시장에 강점이 있는 가전 업체들은 저마다 자체 플랫폼을 내세웠다.

    HW건 SW건 시장점유율 40~50%를 차지하는 지배적 사업자가 등장할 수 없었으니 '플랫폼'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다. 각기 플랫폼이 난립하면 이용자도 효용을 못 느끼고, 기업도 돈을 벌지 못한다. 

    LG전자가 스마트TV 플랫폼·서비스 혁신을 통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건 빅테크들도 실패한 HW와 SW 통합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로 풀이된다. 

    19일 LG전자는 'webOS 파트너 서밋 2023'을 열고 ▲현재 2억대 수준 스마트TV에 설치된 webOS를 외부에 공개해 2026년까지 3억대로 확대하고 ▲5년간 1조원을 투자해 맞춤형 콘텐츠·서비스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박형세 LG전자 HE사업본부장은 "LG전자는 더 이상 단순한 HW 제조업체가 아니다. 다양한 세대에 차별화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SW를 갖춘 플랫폼 기업"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빅테크도 고전한 시장에서 성과를 낸다면 기업 가치에 날개를 달 수 있다. 한 해 TV를 몇 대 팔았고, 평균판매단가(ASP)가 올랐는지 떨어졌는 지로 가치를 매기던 종전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미 webOS를 설치해 팔아둔 2억대에 달하는 스마트TV에서 SW 서비스 매출이 발생하면 ASP를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컨설팅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SW가 정의하는 차(SDC)' 개념을 내세워 SW 매출을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라며 "애플이나 테슬라가 이 분야에서 워낙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으니 전통 제조기업 입장에선 HW 마진이 아니라 SW 개발에 힘을 쏟는 게 사실 맞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애플이다. 지난 2분기 애플의 서비스·구독 상품 등 SW 매출액은 약 210억달러, 우리돈 약 28조원으로 넷플릭스와 마스터카드, 스포티파이, 액티비전블리자드, 펠로톤 등 5개 기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스마트폰 등 기기 판매가 부진해도 지금까지 판매한 수억 대 기기에서 매출이 지속 발생하는 덕이다. 

    정반대 사례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에서 1, 2위를 다투면서도 기업 가치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삼성전자도 과거 갤럭시 시리즈의 자체 SW 서비스 생태계 구축을 준비한 바 있으나 떠올릴 만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투자자 설명회(IR)에서도 ASP 외에 삼성전자 세트 사업에서 발생하는 서비스 매출에 대한 언급은 없다시피 하다. 

    LG전자가 1조원을 들여 맞춤형 콘텐츠 개발하고 webOS를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한계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자사 플랫폼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넷플릭스 등 OTT들의 투자액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액수이나 일단 자체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면 돈 되는 SW는 개발하면 그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마트TV가 SW 플랫폼에 적합한 기기인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거 아마존이나 구글도 알렉사, 구글 홈 등 인공지능(AI) 스피커 형태로 기기 시장을 개척하며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차별화에 실패했고 결정적으로 큰 수익을 남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의미한 매출을 일으키자면 주문, 예약, 결제 등 수수료 기반 서비스가 붙어야 하는데 스마트폰 아성을 넘어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증권사 테크 담당 한 연구원은 "스마트TV로 콘텐츠를 시청하다가 화면 속 상품을 구매, 검색할 경우 리모컨과 아이폰 중 무슨 기기가 더 편할까 생각하면 자명해지는 구조"라며 "TV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이 수수료를 받지 않고 더 편하다고 해도 이용 시간이나 행태가 제한적이고,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대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