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1주년' 앞둔 금융시장의 PF 'PTSD'
입력 23.09.26 07:00
Invest Column
  • 우린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시장도 그렇다. 대신 시장은 좋은 것보단 나쁜 것을 더 잘 떠올린다. 이를테면 'IMF 외환위기 20년', '서브프라임모기지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이런 식이다.

    거의 대부분 떠올리는 건 '위기'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 다시 떠올리는 단어는 '레고랜드'다. 레고랜드를 운영중인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는 기업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을 이유로 <레고랜드 사태>라고 지칭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시장은 그렇게 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서브프라임모기지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음에도 그렇게 쓰이는 것과 같다.

    아무튼 그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돼가는 시점에서, 채권 시장에는 다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형성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말 그대로 특정 지방자치단체장이, 즉 강원도지사의 의도가 있는 듯 없는 액션으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운 나쁘게도 때마침 발생했던 글로벌 국채 시장의 금리 급등, 여기에 환율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사실상 멈추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성됐다. 그리고 그 진짜 주인공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었다.

    그동안 PF 시장은 별 탈 없이 돌아갔다. 아니, 과도하게 호(好)시절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저금리 기조에 시행쪽은 너 나 할 것 없이 더 낮은 금리를 찾아 유동화 증권의 만기를 점점 짧게 만들었고, 금융시장은 투자 상품와 수수료가 늘어나니 쿵짝이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인 위기에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안다. 굴지의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도와줘야 했고, 그걸로 모자라 대형 증권사로부터 금융 약정을 맺어야 했다. 중견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이유로 '이름값'이 있는 건설사는 글로벌 사모펀드(PEF)에도 손을 빌어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숫자들을 봤다.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의 리파이낸싱 금리가 20%를 찍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밖으론 유가 상승, 그에 따른 채권 금리 상승 등으로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고, 안으론 정국이 7개월 뒤에 있을 총선 체제로 이미 접어들었다. 이 말인즉슨 PF 풍선을 그때까진 누구도 터뜨릴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대책은 언제부터인가 그 본래의 역할을 넘어선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부담은 점점 시장 전체로 전이되고 있다. 은행들은 레고랜드 사태 전후로 조달했던 고금리 예금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 수신을 재유치 하거나 신규 자금조달이 불가피하다. 즉 은행채 발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은행채 금리의 상승 압박은 거세지고 이것이 차례로 공사채, 우량 회사채, 여전채의 금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뜩이나 기업들은 절대적인 회사채 발행 금리가 높아졌고 수요도 많지 않아 다시 은행들의 기업 대출로 넘어가는 추세다. 이는 다시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 수요를 늘리고 채권 시장 전체에 금리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윗단에서 금리가 계속 올라가니 또다시 영향을 받는건 숨 좀 돌리나 했던 PF 시장이다. 부동산 PF 만기가 도래하는 9월부터 11월 사이에 벌어질 자금 경색에 대한 위기감이 재차 커지고 있다. 이미 현금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건설사들 위주로 도산이 이어지고 있고 급한 불을 껐다고 여겼던 대형 건설사는 정부에 'SOS'를 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업계에선 끝나지 않는 이 위기에 시행사든 시공사든, 또 채권단이든 PF발 PTSD(중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릴 만 하다고 자조적인 얘기들을 나눈다.

    이렇다보니 정부에선 '정부합동 주택공급 대책'이라는 정책을 또 내놓는다. 금융권에선 1조원 규모의 PF 정상화 펀드 가동도 앞두고 있다. 이 역시 정부의 아이디어다. 절대로 PF 거품을 지금은 터뜨리진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이 거품이 끝까지 터지지 않을까. PF 정상화 기준은 시장의 건전화인가, 아니면 모두가 살아남는 것인가.

    지금부터 부동산 시장, 또는 건설업계의 위기는 재점화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흐를테고, 또 이를 막기 위해서 정치권은 시장의 논리를 무시하고 과도한 목소리를 낼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 때 나돌았던 9월 위기설을 넘어갔지만, "더 큰 문제는 내년 4월 이후에 터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시장에 팽배해지고 있다. 이쯤되면 위기는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