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입만 바라보는 매각 테이블 위 LCC들
입력 23.09.27 07:00
취재노트
산은 행보에 에어부산 外 티웨이ㆍ플라이강원 등 긴장감↑
에어부산, 합병 여부 따라 공개 분리매각 진행 가능해지고
새 주주 맞이하는 티웨이ㆍ플라이강원 몸값 올릴 수 있어
"산은, 항공업계 위해 면피 말고 확실한 입장표명 필요"
  • "산은이 스탠스를 정하지 않으니 매각 협상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물밑에서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계속 들리는데, 이들도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눈치만 보고 있다." – 한 LCC 고위 관계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몇 달째 산업은행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합병) 승인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산업은행이 대안에 대한 언급 없이 침묵만을 유지하자 매각 테이블에 오른 LCC들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티웨이항공과 플라이강원, 에어부산 등 국내 주요 LCC들은 최근 지분 매각을 추진하거나 새 주주를 맞이할 수 있도록 밑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티웨이 2대주주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는 최근 블록딜(시간 외 주식 대량매매)을 통한 엑시트를 준비 중이다. 앞서 JKL파트너스는 지난 2021년 코로나 사태로 경영 위기에 빠진 티웨이항공에 총1017억원을 출자, 항공기 조달 등을 지원하며 지분 약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티웨이와 JKL은 올해 안으로 대주주 손바뀜을 완료하겠다는 공동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 1월 강민균 JKL파트너스 부사장도 사내이사 자리에서 사임했다. 사내이사직을 지속 수행할 경우,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했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플라이강원은 10월27일에 새 주인이 결정된다. 앞서 회사 측 신청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스토킹 호스' 방식의 매각을 추진했으나, 마땅한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자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한 상태다. 

    플라이강원은 LCC 중에서도 적자 규모가 크고, 항공면허까지 반납하면서 상황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주원석 대표이사의 우호지분 약 38%를 구주 매각하는 방식이 아닌, 새 주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9년 주주로 참여한 사모펀드 세븐브릿지프라이빗에쿼티(PE)도 투자금 60여억원을 회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은 부산 상공업계를 중심으로 분리 매각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당초 대한항공 계열 LCC인 진에어와 에어부산·에어서울의 '통합 LCC'가 설립될 계획이었으나, 합병이 지연되자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위해 에어부산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지역사회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부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부산기업들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강석훈 산은 회장과 부산상의 만찬 자리에서 분리매각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상의도 부산 상공인들에 직접 인수 의사를 묻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신공항을 두고 대구·경북 대 부산시(경남)간 경쟁이 붙으면서 에어부산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 이처럼 매각을 희망하고 있는 LCC들은 현재 산은의 행보에 답답함을 표하고 있다. 산은이 합병 성사 가능성에 대해 속 시원히 밝히거나, 합병 무산시 진행될 '플랜B'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야만 물밑에서 검토 중인 원매자들이 노선을 정하고 본격적인 매각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시장에서는 다수 대기업들의 '항공사 인수설'이 지속 불거지고 있다. 

    일례로 한화그룹은 플라이강원이 스토킹호스 절차를 밟을 당시 인수의향서(LOI)를 받아보거나, 하림 계열사인 팬오션이 보유한 한진칼(대한항공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하려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공사 인수설에 불을 붙였다. 

    플라이강원의 우협 선정 과정에서도 모 대기업과 중견 건설기업이 지분 투자 의사를 타진했으며, 몇몇 사모펀드도 재무적투자자(FI)로서 참여를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플라이강원 인수가가 500억원 미만으로 알려졌지만, 회생을 위해 투입해야 하는 비용을 포함하면 1000억원대는 지출해야 한다"며 "이를 감안하면 플라이강원보단 티웨이항공(JKL 지분)이나 잠재적 매각 가능성이 있는 에어부산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분석했다. 

    한화를 비롯해 다수 기업들은 공식적으로 항공사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에어부산 역시 인수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지역 기업은 없는 상황이다. 투자업계에선 아시아나 및 에어부산 제3자 매각 건에 산업은행이 엮여 있어, 공개 매각 의사를 표명하면 정부와 대치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렇다보니 티웨이와 플라이강원 등 매각 협상 테이블에 올라서야 하는 항공사들도 아쉬움이 깊어지고 있다. 대형 투자자들이 출사표를 내야 업계 전반적으로 흥행몰이를 할 수 있고, 더불어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상공업계 관계자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은이 정부와의 면담에서 전임 공정위의 책임을 강조하는 등 '면피 행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라며 "그러는 동안 일부 항공사들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업계에 확실한 시그널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