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금융 시장이 예년보다 일찍 문을 닫을 거란 예상이 많다. 인수금융을 일으킬 만한 거래를 찾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될 법한 건도 시일이 미뤄진다. 지금쯤 4분기 실적의 윤곽이 드러나야 하지만, 마땅한 거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7조원대 HMM 매각이 성사할 경우 단숨에 해갈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미 금융사 전반이 인수 후보군을 찾아 줄을 서는 중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성사 여부를 떠나 연내 실적이 되긴 힘들 거란 평이 나온다.
인베스트조선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3분기 인수금융 거래는 총 11건, 약 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의 3분 1 수준이다. 에어퍼스트와 한국금거래소, LS오토모티브테크놀로지스의 차환(리파이낸싱) 거래 1조2810억원, 해외 인수금융 3000억원을 제하면 국내서 새로 일으킨 인수금융은 약 1조원에 그친다. 거래 절벽 우려가 시장을 덮친 작년 하반기와도 비교가 무색하다.
주선사들은 예정된 기근이라 입을 모은다. 전방 인수합병(M&A) 시장이 지지부진하며 이미 상반기부터 주선 경쟁력을 논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란 분석이 많았다. 상반기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매각 당시엔 어떤 스폰서에 줄을 서느냐로 실적이 갈렸는데, 이후론 그런 거래마저 종적을 감추고 있어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1년 전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 조달 금리나 운용한도(book)에서 여력이 있는 은행이 잠시 우위를 보이는가 했지만 이도 얼마 안 갔다"라며 "전방 M&A 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기 전까진 주선사 전반이 일감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변이 없다면 사실상 올해 영업은 종료 수순이란 전망도 많다.
시장에 조 단위 바이아웃(Buy-out) 매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3분기 중 매각 작업에 들어간 지오영이나 제뉴원사이언스 모두 조 단위 몸값이 거론된다. 매각 작업이 한창인 HMM은 규모가 7조원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 도입으로 수년 동안 잠재 매물로 머물던 보험사 거래도 막을 올린 참이다.
그러나 제때 마무리될 거란 기대는 많지 않다. 여전히 매수·매도자 사이 눈높이 차가 크고 매물을 받아줄 만한 대기업은 비주력 자산을 팔아 해외 투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물론 재무·법률 자문 시장도 경영권 거래보단 메자닌 발행 등 기업의 조달 다변화에서 대안을 찾기 분주하다. 규모나 거래 구조 모두 인수금융과 거리가 있다는 평이다.
실제로 하반기 들어 M&A 시장 단골인 SK그룹의 투자 유치가 다시 기지개를 켰지만 낙숫물이 인수금융 시장까진 흐르지 못했다. SK팜테코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는 우리은행이 일찌감치 브레인자산운용에 손을 내밀었지만 소수지분에 외화로 투자하는 구조여서 차입이 낄 자리가 없었다. SK에코플랜트 추가 투자 유치는 교환사채(EB) 발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 한 실무자는 "묵혀둔 거래가 깜짝 성사된다면 모를까 4분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미 추가 주선 실적을 기대하기 어렵단 목소리가 대부분"이라며 "공식적인 매각 절차에 들어간 건도 반년 이상 시일이 필요할 거란 분석이 많고 일찌감치 내년을 준비하자는 시각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HMM이 마른 땅을 흠뻑 적셔줄 기대주로 꼽힐 수밖에 없다. 하림과 동원, LX그룹 등 인수 후보군 모두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래로 통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금융사 입장에선 그만큼 두둑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기회다. HMM이 하림이나 동원, LX그룹 품에 안길 경우 줄을 잘 선 인수금융 주선사들은 단숨에 조 단위 실적을 나눠가질 수 있다. 금융사들은 경쟁사의 연합 구도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기간산업 거래라는 특성상 인수금융 주선사들의 적극적 지원이 당락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내년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 정부 의중이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애초부터 얼마나 돈을 빌리느냐보다, HMM의 현금을 어떻게 빼서 빌린 돈을 갚느냐가 중요한 거래란 평가가 있었다. 일찌감치 줄을 선 금융사에 맥 빠지는 결과일 수 있으나, 해운업황 불확실성이나 후보군 재무여력을 감안하면 발을 빼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채권시장 경색 1년을 전후해 재차 시중금리가 튈 수 있어 리파이낸싱 주선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기관투자가 역시 대주단 참여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작년 연말과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은 아니라도, 당시 몰렸던 단기물 발행이 순차로 만기를 앞두고 있다. 4분기 중 대주단에 참여하는 리스크를 지느니 내년 초로 미루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결국 여력 있는 증권사가 4분기 중 해외 인수금융 실적을 쌓는 변수를 제외하면 3분기 리그테이블 순위가 연간 성적표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KB증권은 3분기 중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유니바솔루션 대상 조 단위 인수금융 조달에서 외화 텀론B(TLB) 3000억원가량을 주선하며 선두 지위를 굳혔다. 그러나 국내에 TLB 주선·유통이 가능한 증권사는 손에 꼽는다.
은행 투자금융부 한 관계자는 "따로 앞을 내다보긴 어려운 상황인데 좋은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여전히 출자 시장에선 7% 안팎 보장수익률을 요구하고 있어서 스폰서들도 수익률 걱정에 선순위 차입보단 후순위 지분(에쿼티) 위주 투자를 고심하고 있고, 내년까지 기다려도 금리가 충분히 낮아질 때까진 기근이 이어질 거란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M&A 시장 부진 속 인수금융 일으킬 거래도 부족
3분기 신규 인수금융 1조…작년 하반기보다 침체
이변 없다면 '영업종료'…매물은 있어도 성사 난망
7조 HMM發 해갈 기대도 있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
기관도 소극적…선·후순위 7%대 수익률 고착 '지속'
3분기 신규 인수금융 1조…작년 하반기보다 침체
이변 없다면 '영업종료'…매물은 있어도 성사 난망
7조 HMM發 해갈 기대도 있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
기관도 소극적…선·후순위 7%대 수익률 고착 '지속'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9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