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체제 3년…성과보다 쌓인 과제들
입력 23.10.17 07:00
Invest Column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4일 회장직 취임 3주년을 맞이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포함한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현대차는 급변했다. 그룹의 실적은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그 결과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은 판매기준 세계 3위의 완성차 메이커로 등극했다.

    현대차의 도약기를 이끌었던 정몽구 명예회장 세대의 경영진들은 자리를 떠났고 외부 인재를 비롯해 정의선 회장의 측근들이 중용됐다. 군대보다 더 경직돼 있다는 현대차의 조직 문화는 넥타이를 풀면서 다소 누그러졌지만 새 시대에 실권을 잡기 위한 인사들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미래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전기차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미래차 시장에서 한참 뒤쳐진 것으로 평가 받던 현대차그룹은 전세계 생산망과 판매 네트워크 등에 힘입어 여느 완성차 업체들보다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가 가장 앞서나가던 '수소사업'에 대한 주목도는 비교적 떨어졌다. 그룹은 수소 산업 생태계 구성에 앞장서겠단 포부를 나타내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자리잡기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전세계 각 국가들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인프라 구축에만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수소 사업'에 대한 효용 가치를 따져봐야한다. 현대차그룹의 투트랙 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한 것도 아직은 아니다. 전기차 산업의 명실상부한 선두 주자 테슬라는 가격 인하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시장을 잠식해 나가겠단 확실한 의지이다. 무시할 수 없는 선점효과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기 시작한 테슬라의 공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자의반타의반으로 가격 인하 경쟁에 동참한 완성차 기업들의 수익성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테슬라를 뛰어넘겠다는 전략을 차치하고, 현대차가 ’테슬라의 대항마로서 어떤 전략을 내세울 수 있느냐’가 향후 기업가치를 좌우할 중요한 요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선 회장이 부회장(수석 부회장)직에 올랐을 당시, 정 회장의 치적은 더 이상 ‘서자’로 부르기 어려울만큼 성장한 '기아'의 성공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성공 신화로 일컬어지는 K5의 첫 출시(2010년) 이미 13년도 더 지난 해묵은 전설이 됐고 든든한 파트너였던 피터슈라이어 사장은 수년 전 현대차를 떠났다.

    대관식을 앞둔 정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해외 각 지역의 크고 작은 투자와 조인트벤트(JV) 설립을 지휘했고 이를 위한 인재 영입도 주도했다. 본업보다 부업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던 시절, 정의선 회장의 새로운 치적과 전설로 기록될 신사업 투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현재로선 이렇다할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2023년 현재 현대차그룹은 넓게 펼쳐둔 신사업의 전선을 좁히고, 전기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성과도 앞으로 신사업이 아닌 본업에서 판가름이 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으로 촉발한, 해외 사업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현대차의 도약을 이끌었던 중국은 이제는 더 이상 기대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신흥 시장 중 하나였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현상유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철수도 쉽지않다.

    반대로 정의선 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미국 시장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막대한 투자가 계획돼 있는 상황에서 이미 현대차는 북미와 유럽으로 확실한 노선을 잡았다.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 그리고 인도를 비롯한 신(新) 신흥국에서 얼마나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느냐에 현대차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조와의 갈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어느덧 상수가 돼버린 노조와의 갈등은 현대차그룹의 기업가치와 이미지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2023년 현대차 노조와 사측은 5년 연속 무분규 협상 타결에 성공했지만, 정 회장의 친정인 기아 노조와의 협상은 올해도 지지부진하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쟁점은 바로 ‘고용 세습’이다.

    전기차 시대 내연기관에 비해 필요한 부품수가 줄어들고, 자동화 설비가 늘어나는 만큼 직원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그룹은 인력의 자연감소를 기대하고 있지만, 반대로 일자리를 잃어가는 임직원들의 반발은 점점 거세질 것이다. 이는 현대차뿐만의 문제는 아닌데,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의 올해 파업도 장기화하면서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의 트로이카를 굳이 꼽자면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현대모비스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율주행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체 못지 않게 핵심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의 위상에 걸맞게 현대모비스가 글로벌 탑티어급 부품회사로서 자리매김했는지는 생각해봐야한다. 실적 발표 시즌마다 저조한 영업이익률로 질타를 받는데, 사실 관계사이자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와 기아의 불편한 관계를 매번 떠올리게한다.

    결국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 문제로 귀결된다. 그룹은 지배구조개 편의 한차례 실패를 겪은 이후 어떠한 계획과 방안도 내놓지 못하는 상태다. 현대차그룹의 정통한 관계자들 또한 이렇다 할 해법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공법 외에 대안이 마땅치 않음에도 시간만 지체되는 모습이다. 정 회장의 지분승계 작업이 끝나지 않고, 불안정한 지배구조가 지속하는 한 사업적 성과만으로 현대차그룹이 가치를 오롯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자동차 메이커로서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협력업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정적인 원자재 수급과 공급망 확보, 부품사들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정의선 회장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