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끝나가니 법정관리 고개…다시 일손 바빠지는 회생법원
입력 23.10.18 07:00
올해 법인파산 역대 '최대치'…법인회생도 64%↑
고금리로 재무부담 누적에 대출 상환유예도 종료
대유위니아그룹은 시작…건설사 회생신청도 늘어
기촉법도 15일 일몰…내년 회생·파산 급증 우려
회생기업 M&A 어려워…정부 관리 필요하다 지적도
  • 올해 기업들의 파산 신청이 급등하며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줄도산'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며 재무부담이 누적된 데다 지난달 말부터 중소기업 대출 상환유예가 종료되며 계속기업으로서 명맥을 잇기 어려워진 곳들이 많다. 이제 기업 부실 현실화의 초기 단계에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내년엔 도산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던 회생법원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법인회생과 법인파산 접수 건수(8월까지 기준)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3.82%, 58.59% 증가했다. 법인회생은 2019년 이후 하락하다 올 들어 급증해 201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법인파산은 1034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생기업의 인수·합병(M&A)도 증가세다. 16일 기준 서울회생법원에 등록된 회생기업 M&A 건수는 2020년 5건, 2021년 10건, 2022년 22건이었는데 올해는 벌써 17건을 기록했다. 통상 연말에 회생·파산 신청이 몰리기 때문에 올해 그 수치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여러 해 전부터 기업의 부실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팬데믹 유동성으로 플랫폼 등 일부 산업에 돈이 몰렸지만, 실물 기업들의 살림은 예전만 못해졌다는 것이다. 실제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이 크게 늘었고, 이중 상당수가 정부 주도의 지원안으로 연명해 왔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팬데믹 이후 4년째 운영해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를 종료했다. 실적 저하에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는 상황이라 많은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몰릴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당장 우려한 '9월 위기설'이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부실 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칠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도산은 경기 상황을 뒤따른 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산 위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회생 전문 변호사는 "최근 개인과 법인 가릴 것 없이 회생 신청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데 올해보다는 내년 분위기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런 위기는 영세 중소기업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집단 진입이 가까워지던 대유위니아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최근 잇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적극적인 확장 전략이 유동석 긴축 구간에 접어들면서 그룹을 짓눌렀다는 평가다.

    작년 이후 재무부담에 허덕인 건설사들의 줄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만 국원건설과 대우산업개발, 동흥개발이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이달 10일엔 현성종합건설이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우산업개발은 올해 종합건설사업자 시공능력평가액 75위고, 국원건설도 상위 15%에 드는 건설사다.

    이달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은 일몰됐다. 금융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 제도가 사라지면서 당분간 부실기업의 선택지는 회생절차만 남게 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당분간 채권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기업구조조정 운영 협약을 체결해 공백에 대응하겠단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조속히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생법원도 점차 분주해지는 분위기다. 한동안 문을 닫고 싶어도 '금융사의 허락을 받지 못해' 실행에 옮기지 못한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금융지원이 닫히면서 법원을 찾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생법원에선 회생 건수 증가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대비하고 있다. 회생 신청이 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처음부터 '파산'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시각도 있다. 회생 신청 감소에 일손을 놓고 있던 자문사와 관리인들도 다시 움직일 채비를 하는 모습이다.

    한 회생기업 M&A 자문사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업었던 회생 개시 결정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아직은 100억원 안팎의 작은 기업들의 회생 M&A가 많은데 앞으로 점점 덩치 큰 기업들이 법원 문을 두드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회생절차가 활성화하더라도 기업들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은 M&A를 거쳐야 하는데, 정상 기업의 우량 매물도 주인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 올해 국일제지와 에스디생명공학 등 시장의 주목도가 높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M&A 절차가 유찰됐다. 한성식품과 플라이강원은 모두 사전 예비인수자가 존재하는 '스토킹호스'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하다 무산됐고, 이후 공개매각으로 전환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회생기업의 증가는 불가피 하지만 어느 정도의 관리는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자금 부담, 작년 이후 전방위로 불어닥친 유동성 위기는 정부가 주도해 틀어막아 왔다. 금융업계에 부담을 안기는 과도한 개입이라는 시선이 있지만, 그 덕에 '공황'을 피했다는 평가도 있다. 회생 신청이 갑자기 폭증하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금융시장의 신뢰가 일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어느 정도는 개입해 그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생 신청이 급격히 늘고 대형 기업들도 법원에 모습을 드러낵기 시작하면 시장이 일순간에 패닉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며 "미국처럼 우리 정부도 유동성 공급과 지원을 완급조절하면서 문을 닫아야 할 기업만 순차적으로 정리될 수 있도록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