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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의 두 대어(大魚)로 꼽혔던 두 기업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한 기업은 33조원의 청약증거금을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 상장 후에도 공모가보다 50%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기업은 시장의 냉소를 한 몸에 받으며 수요예측 과정에서 이후 공모 절차를 철회했다.
두산로보틱스와 서울보증보험, 두 기업의 상반된 결과는 국내 IPO 시장에 어떤 기업이 통하는지, 그리고 공모가 흥행하려면 어떤 요건들이 필요한지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순이익이 반토막 나서 올해 주당 배당금은 잘 줘야 2000원 안팎일 것 같은데 그럼 시가배당률은 5%입니다. 이거 받으려 청약에 들어가느니 미국 국채를 사거나 훨씬 안정적인 은행주를 사죠. 설명회(IR) 과정에서 억지로 성장주인 것처럼 포장한 것도 전략 실패라고 봅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
국내 공모주 시장은 철저히 성장주 위주로 움직인다. 이는 ▲장기투자펀드(long fund)가 많지 않고 ▲개인투자자 물량 배정이 의무화된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전략적으로 보호예수(lock-up)를 거부하고 있어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단기 차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까닭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예외는 삼성생명이나 LG에너지솔루션 등 덩치가 너무 커서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이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경우 뿐이었다.
두산로보틱스의 경우에도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적지 않았다. 회사 측이 밝힌 2024년 당기순이익이 55억원임을 고려하면 현 시가총액이 반영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주가순이익비율(PER)은 430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두산로보틱스에 투자 수요가 몰린 건 협동로봇 산업이 로봇산업 중에서도 가장 고성장이 예상되는 산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올해 12억달러(1조6000억원)로 추정되는 글로벌 협동로봇 시장 규모는 2025년 21억달러(3조원), 2030년엔 100억달러(13조원) 규모 시장으로 커질 전망이다. 2020년에서 2025년 협동로봇 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36%로, 일반 산업용 로봇 시장 성장률의 3배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보증보험 시장의 성장은 국내 경제 규모 및 금융거래 규모 증가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서울보증보험은 2000년에서 2022년 사이 보증잔액이 13배 늘어났다는 점이나, 2020~2022년 사이 영업이익 규모가 급증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반 토막 난 이유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이는 서울보증보험의 핵심 매력이었던 '배당성향 50%'의 경쟁력도 약화시켰다. 수익을 많이 내야 많이 배당하는데, 수익이 늘지 않은 상황에서 배당성향만 높여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회의론이 득세한 것이다. 여기에 앵커투자자(주도적 투자자) 역할을 해줘야 할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해외 '빅샷'들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투자 수요가 모이지 않았다.
"이건 예측할 수가 없어서 천운(天運)이라고 할만한 부분인데, 발행시장은 유통시장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습니다. 수요예측이나 공모청약 기간에 증시 분위기가 좋으면 반영이 됩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증시 반등기'에, 서울보증보험은 '증시 급락기'에 수요예측을 진행한 점이 분명 영향을 줬을 겁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
두산로보틱스가 IR 및 기업설명회를 진행한 9월 초 코스피 지수는 상승 국면이었다. 8월 중순 2500선을 딛고 단기 반등한 코스피 지수는 9월15일 잠시 26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로봇주는 물론, ITㆍ이차전지ㆍ바이오 등 성장주가 다시 조명을 받는 장세였다. 이런 와중에 시장에 새로 등장한 성장주에 국내 기관 사이에서는 포모(FOMO;소외에 대한 공포) 현상까지 관측될 정도였다.
서울보증보험이 수요예측을 진행한 10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증시 상황은 올해 중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2일 이후 불과 7거래일간 12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그간 지지선 역할을 했던 2400선마저 7개월만에 무너졌다. 이 기간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7000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쏟아냈다. 주식을 비우는 와중에 차익 가능성도, 배당 수익률도 뚜렷치 않은 신규 공모주를 굳이 담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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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반 후 임기 만료를 앞둔 모피아(재정부 관료) 출신 낙하산 대표이사를 '38년 이상의 금융정책 경력'이라는 설명과 함께 '글로벌 최고의 보증보험업 전문가 집단'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공모주 펀드 운용역)
이달 초 진행된 서울보증보험 IR 과정에서는 9명의 서울보증보험 현직 임원들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들 임원들의 설명란에는 담당업무와 함께 '33년 이상의 보증보험업 경력' 등 간단한 이력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글로벌 최고의 보증보험업 전문가 집단'이라고 소개했다.
당장 증권가에서는 개인보증보험 영역에서 사실상 독과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서울보증보험 임직원들의 역량이 과연 글로벌 수준에 맞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쌓은, 50대 한국인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경영진 구성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오히려 부정적 요소가 됐을 거란 분석도 있었다.
지배구조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장 유 대표의 임기 만료를 한달 반 앞뒀지만, 서울보증보험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했다. 서울보증보험 노동조합은 이를 "정부와 대주주(예금보험공사)로부터 어떤 지침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도 차기 대표로 또 다시 모피아 출신 낙하산이 갈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상장 과정에서 두산로보틱스의 지배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두산로보틱스엔 지난해 말 오너 4세인 박인원 대표가 취임했다. 그룹 전략부문 출신으로 차세대 경영인 중 하나인 류정훈 대표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두산엔진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경영수업을 쌓은 박 대표의 존재는 공모 과정에서 '두산그룹이 두산로보틱스를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의 배경으로 꼽히기도 했다.
취재노트
성장주 위주 IPO 시장, 수익ㆍ배당 매력 없었던 서울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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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10월 23일 15:2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