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올리브영 손 들어준 공정위에 쿠팡이 웃는 이유
입력 23.12.08 10:11
"시장 지배적 지위 아냐"…CJ올리브영 손 들어준 공정위
올해 이커머스 점유율 37.7% 쿠팡, 공정위 결정 수혜자
쿠팡, 7월 CJ올리브영 신고 결과 나오기 전에 목적 달성
시선은 쿠팡-LG생건 소송으로…법원 공정위 결정 뒤집을까
  •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CJ올리브영에 18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초 업계에선 과징금 규모가 최대 5800억원에 달할 수 있단 관측이 나왔던 만큼, CJ올리브영으로선 최선의 결과를 받아들었단 평가다.

    과징금 규모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공정위가 CJ올리브영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 위반 판단을 유보하는 '심의절차종료'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CJ올리브영의 사업 영역을 H&B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온라인 시장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가 인정될 경우 매출액의 최대 6%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으로 CJ올리브영의 전장은 이커머스까지 확대됐다. 기존 오프라인 H&B 시장에서 CJ올리브영은 80%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독점적 사업자였다. 하지만 시장을 이커머스까지 넓히면 점유율은 12%대로 내려간다. 향후 사업을 영위하면서 발생할 위험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공정위의 관대한 시장 획정으로 쿠팡도 수혜를 입었단 관측이 나온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구도를 인정한 이번 결정에 따라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는 쿠팡도 시장 지배적 지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단 이유에서다.

    데이터조사업체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쿠팡은 올해 네이버쇼핑을 제치고 온라인 쇼핑몰 점유율 1위(37.7%)를 기록했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은 지마켓, 11번가, 쓱닷컴 등의 점유율이 점차 줄어들면서 쿠팡과 네이버의 2파전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50%'라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은 쿠팡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LG생활건강을 상대로 진행중인 소송에서도 이번 공정위의 결정이 쿠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2021년 공정위는 쿠팡에 33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쿠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소송의 관건도 당시(2017~2018년) 쿠팡의 시장 점유율이다. LG생건은 쿠팡이 독점적 유통업체 지위를 남용해 회사측에 부당하게 판매 가격 인상을 요구했단 입장이다. 쿠팡은 소송 과정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감안하면 회사의 당시 점유율은 2%에 불과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지난 7월 CJ올리브영을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다. CJ올리브영이 H&B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 업체의 쿠팡 입점을 방해했단 것이다. 당시 업계에선 쿠팡의 신고 의도를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2019년 쿠팡이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던 때부터 일어났던 일을 4년이 지난 2023년에서야 신고했기 때문이다.

    쿠팡이 CJ제일제당과의 '햇반전쟁' 전장을 CJ올리브영까지 확대한 것이란 의견이 많았지만, 일각에선 쿠팡이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공정위가 쿠팡 손을 들어주면 H&B 업계에서 입지를 늘려갈 수 있고, CJ올리브영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시장 지배적 지위에서 자유로워져 LG생건과의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으로선 공정위의 결정와 무관하게 회사에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었단 설명이다.

    쿠팡의 CJ올리브영에 대한 공정위 신고 건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이미 쿠팡은 사실상의 목적을 달성했단 평가다. 이에 업계의 시선은 곧 있을 쿠팡-LG생건의 추가 변론과 법원의 최종 판결에 모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예상보다 빨리 원하던 결과를 얻게 됐다"며 "이번 공정위의 결정이 쿠팡 측에 유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만큼 최종 판결에서 법원이 기존 공정위의 결론을 뒤집는다면 쿠팡이 향후 주요 제조업체들과의 납품가 협의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 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