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인사는 SK로 시작해 SK로 끝났다. 어느 정도 예견은 돼 있었다지만 올해 SK그룹 인사는 말 그대로 획기적이었다. 그동안 그룹을 이끌어온 부회장들이 2선으로 물러났고, 전면적인 경영진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사실상 그룹 2인자로 불리는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의장엔 오너 경영인의 혈육이 낙점됐다. 

시장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핵심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이 다시 그룹 전면에 등장했다"라고. 여기엔 어떤 함의가 있을까.

SK그룹을 1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조대식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이른바 '부회장 4인방'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SK㈜,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엔무브, SK온,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 7개 계열사 대표가 교체됐다. 최태원 회장이 '서든 데스(돌연사)'를 언급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이번 인사로 경영진의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또 다른 관심은 수펙스 의장이었다. 사실상 그룹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자리인데 조대식 의장은 누구보다 이 자리에 적합하다는 평가와 더불어 '한 번 더 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랬던 조 의장이 물러나면서 그 자리에 누가 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주인공은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었다. 그동안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최고경영진을 유지해 온 최 회장이 돌연 오너 일가를 불러왔다.

재계에선 최 회장에게 진정한 충언(忠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보고 있다.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 문화의 장점도 분명 있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았다. CEO들간의 경쟁 심화는 계열사 간 중복 투자로 이어졌고, 이에 그룹의 재무부담은 증가했지만 그에 걸맞는 시너지 효과를 내진 못했다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월급쟁이 CEO들은 그룹 전체보단 자기 회사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고 SK그룹의 경영 문화는 이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창원 부회장은 창업주의 막내 아들로서 누구보다 그룹을 소중히 여길 인물이고 그룹 전반을 들여다보며 최 회장에게 객관적이고 진정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여러 면에서 높은 편이다.

이번 인사 및 조직 개편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SK㈜와 수펙스의 역할 변화다. 수펙스와 SK㈜로 분산돼 있던 그룹의 투자 기능은 모두 SK㈜로 이관된다. 수펙스 소속이었던 미국·중국·일본 등 글로벌 오피스도 SK㈜로 조직을 옮긴다. SK㈜는 중복됐던 투자 기능을 일원화·효율화함으로써 투자 자산의 미래 가치를 높여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각각의 역할이 수펙스는 관리로, 지주사인 SK㈜는 투자로 정리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그룹의 투자는 SK㈜의 소관이 됐다는 건데 이는 SK㈜의 기업가치 상승, 더 나아가 SK㈜의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세(勢) 확대와 무관치 않다.

SK㈜의 새 CEO로 낙점된 장용호 사장은 특히 최태원 회장의 신임을 받는 인사로 알려졌다. SK㈜ 투자센터장, SK머티리얼즈 사장, SK실트론 사장의 커리어를 차례로 쌓으면서 SK그룹의 첨단소재 투자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이젠 SK㈜ CEO로서 최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투자를 총괄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의 사람이 그룹의 투자를 진두지휘하게 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인사 및 조직 개편을 통해 그룹의 헤게모니를 지주사인 SK㈜가, 보다 명확하게 얘기하면 최태원 회장이 다시 쥐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밖으로는 최 회장을 포함해 오너 일가의 책임 경영을 한층 강화한다고 볼 수 있고, 안으로는 최재원 부회장과의 형제 경영을 넘어 사촌 경영으로 확대하면서 조용하던 승계 분위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를 최태원 회장의 개인사와 연관짓기도 한다. 최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 부사장급 임원 승진으로 최연소 임원이 됐지만 어디까지나 지분 승계 없는 승진이다. 시간적으로 더 가까울 것 같던 승계보다, 멀어질 것 같던 사촌을 다시 불러들인만큼 최 회장 개인사와 연관지으며 이번 인사가 장기적으로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분명한 건 SK그룹은 다시 최태원 회장의 손으로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