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 형평성 논란, 강행 여부 미지수…지금 팔면 이득 볼 곳은 산업은행뿐?
입력 23.12.15 07:00
지난달 본입찰 후 장고…거래 조건 놓고 갈등 지속
하림 영구채 전환 제한 요구에 동원 '불공정' 반발
대우건설 때처럼 동일 조건 정비 후 재입찰 방안도
결국 인수후보 체력 문제…정책상 '매각 이득 없다' 지적도
  • HMM 매각 결론이 쉽사리 나지 않고 있다. 가격에서 앞선 하림그룹은 영구채 전환 등 조건을 두고 매도자와 이견을 드러냈다. 반면 매도자의 요구를 거의 수용한 동원그룹은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 분위기다. 사실상 입찰 조건이 다른 거래라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하림그룹은 동원그룹보다 앞선 가격을 써냈지만 매도자가 잔여 영구채를 3년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길 바란다는 요구도 제시했다. 영구채 주식 전환 시 HMM 지분율이 57.9%에서 38.9%까지 하락해 경영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당 수익도 줄어든다. HMM 연 배당액이 5000억원이라 가정하면 인수자는 배당금 1000억원을 덜 받게 되고 자금 활용 계획도 꼬이게 된다.

    동원그룹은 매도자의 영구채 주식 전환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5년간 주주변동 제한, 3년간 배당 규모 제한 등 조건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배당금 축소, HMM 현금 활용 제한 등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수가는 낮춰서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 동원그룹은 매도자 측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매도자가 하림그룹의 요청을 수용하면 사실상 가격을 깎아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하림그룹과 동원그룹 간 거래 전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동행한 것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산업은행은 하림그룹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인데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공적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금액 요소를 무시할 수 없지만, 동원그룹의 반발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동원그룹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거래는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금액이 높은 하림에 주든, 조건만 같았다면 가격을 더 쓸 수 있었다는 동원그룹에 주든 향후에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상황이 이러니 조건을 정비해 다시 입찰을 받아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영구채 전환 유예든 반대든 한 기준을 정해서 투자자들의 제안을 받으면 형평성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자들의 의지가 강한 만큼 유찰 가능성도 크지 않다.

    과거 산업은행 관련 거래에서 재입찰을 진행한 사례도 있었다.

    2021년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KDBI)는 대우건설 매각을 진행했다. 그해 7월 중흥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중흥건설이 차순위자보다 수천억원이나 많은 금액을 쓰게 된 사실에 반발해 발을 빼겠다고 하며 논란이 커졌다. 본입찰 후 양해각서(MOU) 체결 단계에서 보증금을 받기로 했기 때문에 매도자가 중흥건설을 만류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이에 KDBI는 초유의 재입찰을 결정했다. 한 후보가 제안을 수정하고 싶다고 요청해 이를 수용했으며, 다른 후보도 수정할 뜻이 있으면 제안을 다시 하라 전했다고 했다. 가격 조정한도(3%)는 사실상 배제됐다. 결과적으로 중흥건설은 재입찰을 거쳐 수천억원의 금액을 아꼈다. 가격 조정한도를 넘겼으니 적격후보가 아니라는 차순위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HMM 매각은 인수자간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에서 대우건설 M&A와 차이가 있지만, 재입찰 시 거래 추진 동력이 더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같다. 물론 애초에 뒷탈이 없이 매각 구조를 꼼꼼하게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유효한 원매자들이 있었던 거래를 장고 끝에 날려버리는 것도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매도자가 한 쪽 편을 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재입찰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같은 조건을 설정해서 다시 입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당시의 대우건설 매각 재입찰을 두고 감사원이 '중흥건설 특혜여부'를 따져 산은을 감사하고 있다. 그러니 논리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산업은행이 실제로 재입찰을 검토할지는 미지수다.

    본질적으로는 '이번에 HMM을 매각하느냐' 여부를 둘러싼 산업은행과 정부, 그리고 해운업계의 입장차이 및 이해관계의 충돌이 남아 있다. 

    매도 주체인 산업은행은 "정상기업은 민간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을 그간 일관되게 펼쳐왔다. 산은이 투입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면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입찰이든 다른 안이든 HMM을 팔 수만 있다면 웬만한 부담은 감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산업은행의 상황일 뿐, 이번에 매각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국내 유일의 대형 원양선사가 매각 후에도 앞으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고민은 별개 문제라는 것. 이에 해양수산부와 해양진흥공사는 하림그룹과 동원그룹 모두 인수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상황이다. 다만 아직은 매각 주도권을 쥔 산업은행의 목소리가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 산업 정책면에서 이번에 HMM 매각을 강행하는 것이 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매각 의지를 보이지만 결국 산은은 '정부의 대리인' 역할이다. 아울러 HMM 매각은 단순히 산은의 투자금 회수가 아닌, 정부 차원의 안건으로 올랐다. 그러니 한진해운 파산 원죄가 있는 정부는 HMM 매각 후 해운업 경쟁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따지면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당장 매각을 완수하는 것보다, ‘매각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매각 조건을 둔 인수후보들 사이의 논란도 결국은 인수자의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서 기인했다. 하림그룹은 동원그룹보다 높은 금액을 썼지만 차입성 자금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인 숫자는 높게 썼지만, 이를 보완할 조건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동원그룹이 하림그룹보다 재무 여력이 완연한 우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자본력을 갖추지 않은 곳에 HMM을 넘기면 재무적투자자(FI)만 좋은 일을 시키는 꼴이 될 것이고, 정부가 다시 돈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지금 거래 관계자간 뜻을 좁혀가는 것보다는 재무 여력이 큰 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거래를 물리는 것이 위험을 피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