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안사요, 무서워서 못사요"…자칫하면 '불공정 거래' 낙인에 몸 사리는 기관들
입력 23.12.18 07:00
취재노트
  • 최근 주식시장에선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가 사라졌다.

    블록딜은 여러 이유로 인한 대주주의 재원 마련, 대형 투자자의 차익실현 등을 이유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블록딜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 대신 일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클럽딜 형태의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블록딜은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할인율이 적용된 가격에 주식을 인수할 수 있었던 기관투자자들은 일정 기간 내 매도해 차익 실현이 충분히 가능했다.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기대수익이 더 컸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식시장엔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블록딜과 같은 몇몇 기관들만 알 수 있었던 정보들도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블록딜은 장 마감 직후부터 약 2~3시간 사이 투자자를 모집하는데 최근엔 이 과정에서부터 정보가 누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록딜 소식이 확산하면 시간외거래 가격과 다음날 시초가에 할인된 가격이 반영되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의 메리트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과거와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관들이 블록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하고 일부 기관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들었단 점에서 금융시장이 선진화하고 있는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블록딜 실종의 이면엔 기관투자자들의 사정이 있다.

    금융당국은 내부정보 이용 거래, 미공개정보 이용거래, 선행매매 등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기관투자자들의 주식 거래의 감시망을 더 좁히고 있다. 시세조종 혐의를 받는 카카오, 선행매매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한국앤컴퍼니 등 최근 들어서 주식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시가 더욱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불공정거래와 관련해선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기관들이 금융당국의 규제에 맞처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실무진들의 정상적인 거래 활동이 위축한다는 지적도 무시할 순 없다.

    국내 한 기관투자자 주식운용 담당자는 "카카오 시세조종 사태 이후 더욱 깐깐해진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가 이뤄지면 어김없이 상부에서 연락이 온다"며 "최근 들어선 정상적인 투자 활동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블록딜만 보더라도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아예 인수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기관들은 블록딜로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선 준법감시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거래로 규정되기 때문인데, 해당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선 정당성을 실무진이 스스로 입증해야한다. 사실 퇴근 시간 이후, ‘얼마나 배정받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트레이더와 준법감시인을 모두 붙잡아 두는 눈치게임을 펼쳐야하는데 그마저도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미공개 정보 이용 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공개 정보라는 다소 애매한 범주의 규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 확실한 호재를 확인했음에도 투자를 망설이면서 애초에 거래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유도하려는 금융당국의 노력은 박수 받아야 한다. 다만 지나칠 수 있는 규제로 일선 실무진들의 정상적인 투자 활동이 제약받는 상황, 이로 인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대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기조가 확산하는 상황은 경계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