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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12%.
엔씨소프트의 희망으로 손 꼽히던 '쓰론 앤 리버티'(이하 TL) 출시 이후 엔씨소프트의 주가 성적표다. 불과 일주일 새 시가총액 7000억원이 증발했다.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1000억원 안팎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대작이 낳은 결과다.
TL 공개 이후, '게임은 재밌지만 BM(수익 구조)이 약탈적이다'에 가까웠던 엔씨소프트의 평판은 '이젠 게임조차 재미없다' 쪽으로 기울고 있다. 캐시카우(주 매출원)인 '리니지' 시리즈의 독주 속에 안주하다 게임 산업의 트렌드를 완전히 놓쳤다는 것이다.
'리니지' 시리즈, 원초적 권력욕을 자극한 게 성공 비결
리니지 시리즈의 핵심 성공 비결은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을 자극하는 BM 구조에 있었다. 돈을 써서 강해지면, 다른 강한 동료들과 함께, 성과 영지를 차지하고, 세금을 걷어 생긴 부(富)로 더욱 강해져서, 돈을 덜 쓴 다른 사용자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돈을 계속 쓰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를 만들어, 끝없이 사용자들로부터 매출을 이끌어냈다. 폭발적인 매출 성장세를 목격한 다른 게임사들은 너도 나도 아류작들을 쏟아냈다. 캐릭터의 성장과 그를 통한 권력 획득을 중시하는 게임에 '리니지 라이크'라는 장르명이 붙기도 했다.
리니지 라이크류의 특징은 '성장' 그 자체에 재미의 요소가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성장은 보통 돈을 들여야 하는 '수집 요소와 '뽑기'로 이뤄진다. 때문에 탐험이나 조작은 불필요한 사족으로 여겨지며, 자동 이동ㆍ자동 사냥이 시스템화 돼있다. 화면이 작고 조작이 어려운 모바일로 주 무대가 바뀌며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공고해졌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에 취해 트릭스터M, 블레이드 앤 소울2 등 다른 IP(지적재산권)의 게임도 모두 '리니지 라이크'류로 바꿔 내놓고 있던 사이, 국내외 게임 시장의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캐릭터의 상품성에 집중하는 서브컬쳐 게임, 조작의 극한을 추구하는 '다크 소울'류 액션 게임,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내세우는 어드벤처 게임 등으로 사용자들의 취향은 세분화ㆍ파편화됐다.
'리니지 시리즈'에서 탈피한 TL, 새로운 즐거움 주는 데엔 실패
엔씨소프트도 이 같은 세간의 변화를 인지하고는 있었다. 기존 리니지 시리즈와의 차별화를 위해 TL에서 자동 이동과 자동 사냥 기능을 뺀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 후의 역량 부족이었다. 성장의 즐거움이 빠졌다면 조작의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크 소울'류에 길들여진 사용자들의 눈높이에는 조작성이 한 없이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주류다. 탐험과 스토리의 즐거움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이다. 불친절한 안내와 복잡한 동선으로 인해 탐험은 불편하기만 하고, 스토리는 진부해 몰입이 어렵다는 후일담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TL은 '착한 BM'을 전면에 내세운 게임이기도 하다. 캐릭터 당 1번만 구입할 수 있는 2만9900원짜리 '성장 패스'와 4주마다 1번씩 구입할 수 있는 '배틀 패스' 외에는 별 달리 돈을 쓸 곳이 없다. '패스'는 꾸준히 접속하고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면 추가 보상을 주는 유형의 BM이다. 과금 진입 장벽을 낮춰 '박리다매' 하겠다는 게 TL의 방향성임을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문제는 TL에 '즐거움'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적은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TL은 컴퓨터(PC) 게임인데, 출시 이후 3일간 사용자 통계 업체 게임트릭스 기준 국내 PC방 점유율이 평균 0.7%에 불과했다. 10위권 밖 순위로, 엔씨소프트가 2008년 내놓은 자사 게임 '아이온'(점유율 0.65%)과 비슷한 수치다.
삼성증권은 지난 12일 엔씨소프트 목표 주가를 24만원에서 21만원으로 3만원 낮췄다. TL의 내년 국내 매출 추정치를 2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크게 낮추면서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동접자 수는 10만명 이하로 추정되며, 패스 중심의 BM으로 인해 이용자당 매출액(ARPU)은 경쟁 게임보다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부연했다.
'리니지 라이크류의 성장 요소는 뺐으나, 이를 대체할만한 즐거움은 준비하지 못했으며, 돈벌이도 안되는, 어중간한 게임'이라는 게 현재 TL에 대한 냉정한 평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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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 그대로 두면 주가 방어 어렵고...추가하자니 사라진 '신뢰 자본' 부담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언젠가 TL에 '약탈적 BM'이 추가될 것이라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낮은 진입 장벽에도 불구, 엔씨소프트가 목표하고 있는 20대~30대 사용자들이 TL을 꺼리는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씨소프트는 이미 지난 2021년 사용자들의 '신뢰 자본'을 모두 잃었다는 게 업계 통설이다. 2021년 1월 이른바 '문양 사태'를 시작으로 약탈적 BM에 대한 성토가 들끓자, 엔씨소프트는 그해 11월 출시 예정인 '리니지W'는 기존의 리니지 시리즈와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 리니지W는 기존 리니지 시리즈의 약탈적 BM을 이름만 바꿔 내놨다. 출시 40일 후엔 확률적으로 아이템 획득까지 30만~50만원이 소요되는 뽑기식 BM 마저 도입했다. 쇼케이스(사전 공개 행사) 당시 '현재는 도입 계획이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던 BM 대부분을 이름만 바꿔서, 심지어 일부는 더 악랄한 방식으로 가져왔다.
리니지W 출시를 기점으로 반(反) 엔씨소프트 정서는 극에 달했고, 이는 엔씨소프트 실적과 주가의 동반 추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리니지W 출시 직전 주가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TL의 BM을 그대로 두면, 매출과 이익을 내기가 어렵다. 이는 주가 방어가 힘들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심지어 엔씨소프트는 내년 TL의 글로벌 서비스 외엔 이렇다 할 대작 출시 일정도 잡혀있지 않다. 그렇다고 BM을 추가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비판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잦아들어가던 반(反) 엔씨소프트 정서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 리니지W에서 잃은 신뢰 자본의 상실이 크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번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망해버릴 수밖에 없지만, 섣불리 한 쪽을 선택할 수도 없는 이른바 '멸망전'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사모펀드 前 대표'가 엔씨소프트를 구원할 수 있을까
엔씨소프트는 지난 11일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향후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엔씨소프트의 공동 대표로 활동할 계획이다. 박 대표 영입을 두고 회사 안팎에선 '소송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 '현금 자산 투자를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난무한다. '김앤장 M&A 변호사', '대형 사모펀드 대표' 등의 이력을 참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병무 공동대표는 엔씨소프트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금융권에서는 박 대표의 '경영인 이력'에 주목한다.
그는 2000년 로커스홀딩스(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맡았고 '악튜러스'·'화이트데이' 제작사 손노리를 합병하고, 넷마블 지분 51%를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해왔다.
2005년에는 뉴브리지캐피탈(현 TPG)한국대표로서, 하나로텔레콤의 경영위원회 의장을 거쳐 2년간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 무렵 하나로텔레콤은 연이은 적자와 구조조정, 임원 퇴사, 파업, 경쟁사의 초고속인터넷망 사업 진출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박 대표는 '모든 답은 회사 안에 있다'며 두 달간 160명에 달하는 팀장 한명 한명을 모두 면담한 뒤, 원조 IPTV라고 할 수 있는 '하나TV'를 출시 시키기도 했다. 출시 후 1년 만에 하나TV 가입자는 50만명을 돌파했고, TV와 인터넷ㆍ전화가 묶음상품으로 판매되며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현재 엔씨소프트 사내 분위기는 최악에 가깝다는 증언이 안팎에서 들린다. 그간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던 리니지 시리즈가 이제는 극복해야 할 구습ㆍ폐단이 되며, 경영진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가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공동대표로 선임되면, '집행임원'의 권한으로 하나로텔레콤 때와 비슷한 혁신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는 과거 인베스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구상해 온 모든 변화를 인수 후 첫 1분기, 즉 3개월내에 실행해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야 합니다"라고 밝혔던 바 있다.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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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12월 15일 15:3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