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량 회사채 폭탄에 PF·한전채 도돌이표…더 타이트해질 내년 조달시장
입력 23.12.21 07:00
올해 포스코ㆍ현대중공업 등 미매각 물량 리테일이 떠안았지만
내년 초 비우량 회사채 소화는 의문…부동산PF·한전채도 관건
발행사 등급별 양극화 속 건설업發 크레딧 스프레드 상승 우려도
"PF발 유동성 고갈 가능성…내년에도 변동성 커 비우호적 장세"
  • 올해 채권자본시장(DCM)은 리테일(개인 투자자) 수요로 한 시름 덜었다. 지난해 주관사들이 발행사와의 관계 때문에 떠안은 미매각 물량으로 골머리를 앓았다면, 올해는 5~7%대 고금리를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자산관리(WM)센터 등 리테일 채널을 통해 채권에 투자하면서 발행사와 주관사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 회복세 국면이 이어질 지는 의문이다. 내년 상반기엔 더 이상 조달을 미룰 수 없는 저(低)신용등급 기업들의 비우량 회사채들이 대거 출회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야기할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와 한전채 신규 발행까지 다양한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 

    최근 증권업계에선 내년 상반기 채권시장 변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종료되고 3분기엔 인하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지만, 부동산PF 부실이라는 거대한 익스포저가 뇌관으로 떠오른 탓이다.

    실제 올해 회사채 수요예측은 큰 미매각 없이 대부분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한신공영이나 신세계건설, KCC건설, 쌍용씨앤이, 한국토지신탁 등 부동산 관계업종은 발행 금리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발행 예정액에 한참 못 미치는 매수 주문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았다. 

    내년 부동산PF 부실이 본격화하면, 일차적으로 PF사업장에 책임준공 등 지급보증을 약속했던 건설업종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이전보다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하는 만큼, 건설사의 유동성 경색은 심화할 전망이다.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회사채 투자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크레딧 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간 금리차)도 확대, 전반적인 회사채 시장의 발행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다음해인 2009년 건설·조선·해운업종의 재무상황이 악화되면서 신용등급이 A등급 이하로 대거 강등된 이후, 회사채 시장이 한동안 경색된 적이 있다"며 "아직 부동산PF 사태가 본격화하지 않은 만큼 내년 변동성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부동산PF 지원을 위한 공사채 발행도 회사채 시장을 압박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부동산 지원 대책이 대부분 HUG(주택도시보증공사)나 산업은행,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공기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공사채가 쏟아질 경우 상대적으로 비우량 회사채의 미매각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공사채의 중심에 있는 한전채 물량이 채권시장에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국전력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자회사에 약 3조5000억원 수준의 중간배당을 요구했는데, 이 배당 요구를 맞추려면 자회사들 역시 회사채를 더 많이 발행해야 한다. 특히 발전업 자회사들은 사채 발행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우량 공사채가 쏟아지면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일 수 있다. 

    중소형 증권사 커버리지 임원은 "연기금 등 기관들의 회사채 인수 물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공사채가 쏟아져 나올 경우 일반 기업들의 수요예측 흥행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며 "아직까진 한전채 유통금리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전 재무개선에 대한 효과적 메시지가 시장에 전달되지 못한다면 내년 시장도 '한전채 블랙홀'로 빠져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엔 리테일 자금 유입 확대도 기대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올해 포스코, 삼척블루파워, 현대중공업 등 미매각 물량들은 고금리를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인수하면서 주관사와 발행사의 부담을 덜어줬다. 

    내년 상반기엔 더 이상 자금 집행을 미룰 수 없어 '금리 인하 기대감'만을 재료로 이용해야 하는 신용등급 A급 이하의 회사채가 대거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건설업을 비롯해 유통업, 도소매 등 실물경기 침체에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들의 경우, 기획재정부로부터 '발행 윈도우(프라이싱 일정)'를 받고 연초 발행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전채 발행량이 지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동산PF와 관련된 부정적 분위기가 형성되자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들 역시 우량채권 위주로 투자를 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내년 시장도 AAA급 이상의 우량기업 및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분야의 기업들로 수요가 쏠리는 '옥석 가리기'가 주를 이룰 전망이다. 

    한 중소형 증권사 영업담당(RM)은 "부동산PF 이슈는 여전히 시장의 큰 위협요인이며, 일부 부채가 많은 그룹 및 부동산 연계 업종은 여전히 조달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