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폭 작았던 신한금융 인사...자산 우려ㆍ규제 변화가 배경
입력 23.12.20 11:09|수정 23.12.20 11:09
CEO 물갈이ㆍBU 도입 미뤄...지주 조직 슬림화에 우선 방점
책무구조도 등 지배구조 규제 도입...BU 제도 이해상충 우려
부동산 등 부실 우려 자산 보유 CEO 연임 '결자해지' 평가도
  • 계열사 대표이사(CEO) 물갈이도, 시너지를 위한 비즈니스유닛(BU) 도입도 없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취임 이후 사실상 첫 인사였고, 일찌감치 지배구조 개편안을 준비하는 등 내부적 고민도 많았지만 일단은 안정에 방점을 찍고 가는 모양새였다.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및 사모펀드 등 일부 자산의 지속적인 부실화 가능성과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관련 규제 변화 기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단 올해는 전방위 개편보단, 지주 내 부문 축소와 계열사 CEO 임기 관련 정책 변경 등 '지주 조직 관리' 분야에서 확실한 '색깔'을 내기로 한 것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한금융은 지난 19일 열린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에서 당초 예상되던 BU 도입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계열사를 사업군별 3개 그룹으로 묶어 상호 시너지를 추구하는 조직 개편안을 자경위 직전까지 논의했지만, 일단 이번 인사에선 해당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금융권에선 내년 전면 도입 예정인 '책무구조도'와의 이해상충 소지로 인해 BU 도입이 미뤄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각 계열사에 소속조차 되지 않을 특정 계열사의 CEO를 계열사별 '책무구조도'에 넣을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이다. BU조직장의 지시에 대한 법적 책임도 모호하다. BU조직장은 기본적으로 한 주력 계열사의 CEO일뿐, 개별 계열사의 임원이 아닌 까닭이다. 만약 BU조직장이 책무구조도상 명시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주의 CEO인 회장은 어디까지 내부통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 2017년 BU 조직을 도입한 롯데그룹의 사례도 회자된다. 롯데의 BU 체제는 5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협의체'라는 구조의 한계 때문이었다. 각 계열사별로 인사ㆍ재무ㆍ전략 등 핵심 경영 기능이 별도로 존재했기 때문에 지주의 BU조직장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 않았다. 각 계열사별로 의사결정을 마친 안건도 상위 조직인 BU의 보고를 거쳐야 하는 등 옥상옥(屋上屋) 구조로 인한 비효율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안은 금융당국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 및 시행령 손질은 내년 6월께 마무리될 전망이다. 아직 책무구조도 관련 규제 방향이 확정되지 않은만큼, 법 개정 상황을 확인한 후 내년 중 재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자경위에선 계열사 CEO '물갈이 인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진 회장이 취임 후 처음 계열사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다,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는 9개 계열사 10명의 CEO 중 5명이 이미 연임을 거쳐 3년 이상의 임기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대규모 인사가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자회사 정리 일환으로 청산이 결정된 신한AI와 신한자산운용 대체자산부문 두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CEO들은 전원 연임됐다.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와 조재민 신한자산운용 대표는 연임 과정에서 1년이 아닌, 2년의 임기를 보장받았다. 자본시장 부문에선 장기적 안목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 계열사 CEO 인사의 기조를 보면, 신한금융은 더이상 '2+1'(초임 2년 후 1년 연임) 원칙에 연연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진옥동 회장 역시 이번 인사를 앞두고 '신한에서도 장기 재직하는 CEO가 나와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원칙이 적용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신한캐피탈ㆍ신한투자증권ㆍ신한자산운용 등 부동산 등 고금리 상황에서 부실화가 진행되고 있는 자산을 보유한 회사의 CEO가 연임됐다는 게 그 이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캐피탈의 경우 정운진 현 대표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문 자산을 크게 늘린만큼, 해당 자산의 부실화까지도 책임지란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며 "신한운용 대체부문의 김희송 사장을 영업대표로 내려 경영관리 부담을 덜어준 것도 '대체자산 부실화 대응에 힘쓰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신한금융 인사의 방점은 '지주 조직 슬림화'에 찍혔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11개 부문에 10명의 부사장을 두며 비대해진 지주를 4부문 4파트로 축소하고, 직급 역시 부문장ㆍ파트장으로 단순화시켰다. 오는 28일경 진행될 전망인 신한은행 부행장급 인사 역시 지주에 맞춰 일부 조직을 통폐합하고 전체 임원 수를 줄일 거란 전망이 많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엔 규제 이슈 등으로 인해 은행ㆍ비은행 모두 영업환경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그룹 차원의 대규모 개편은 뒤로 미루고 지주 조직부터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 회장은 아직 2년 3개월의 임기가 더 남아있는만큼, 일단 안정적 경영 토대를 마련한 뒤 순차적으로 개편을 진행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