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은 왜 외국인투자자의 타깃이 될까?
입력 23.12.26 07:00
취재노트
팰리서캐피탈, 화이트박스, 씨티오브런던인베 등
하반기만 세번째 공세…엘리엇의 악연은 현재 진행형
낮은 기업가치에 미흡한 주주환원 등 단골소재
1000억으로도 삼성그룹 흔들수도…
엘리엇과 8년째 분쟁 중, 여전히 개선책 찾기 어려워
준감위원장 "필요한 내용 있다면 전달할 것"
여전히 후행적 '방어'에 급급, "선제적 대책 마련 必"
  • 전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대주주, 국내 재계 1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삼성물산은 외국계 주주들의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기업중 하나다. 올 하반기 들어서만 세번째, 알려지지 않은 주주활동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상에 걸맞지 않게 낮은 시가총액,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주주환원정책, 사업형 지주회사(격)이지만 사업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본업에서의 실적, 주주들과의 소통 부재, 외풍에 취약한 지배구조 등은 삼성물산의 현 주소를 여실히 말해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20만원을 넘나들던 삼성물산의 주가는 현재 13만원 수준에 겨우 거래되고 있다. 이마저도 최근 1~2달새 급격히 오른탓인데, 올해 중순만해도 주가는 1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2만원대였던 삼성전자의 주가가 현재 7만원을 훌쩍 넘겼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5%를 보유한 대주주다. 지분가치만 23조원으로 삼성물산의 시가총액과 거의 유사하다.

    이런 상황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저평가'란 단어는 삼성물산에 꼬리표처럼 달려있다. 외국계 투자자들도 늘 삼성물산이 저평가 돼있다고 지적하지만 10년 넘에 이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서 저평가는 상수, 현 수준이 딱 적정한 평가라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회사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도 더 이상 낮은 기업가치의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최근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Palliser Capital)은 삼성물산을 향한 주주제안 내용을 공개했다. 팰리서캐피탈이 보유한 주식은 0.62%로 시가 약 1200억원어치 정도다. 

    사실 1000억원 내외의 자금만으로 전세계 1위 반도체 회사의 대주주이자, 삼성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오너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을 움직일 수 있단 '메리트'는 분명히 있다. 성공한 전례는 없지만 획기적인 주주제안으로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사진을 파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국내 투자자들이야 삼성의 아성에 도전하기 쉽지 않고 대내외 후폭풍을 감당해야하는 부담이 크지만, 공세에 실패해도 손 털고 한국을 떠나면 그만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재계1위 삼성그룹의 최상단 지배회사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먹잇감이다. 혹시나 주주제안으로 인해 주가가 단기간에 상승한다면 차익거래의 기회도 생긴다.

    사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가지 간과한게 있다면, 삼성물산은 더 이상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에게 주목받는 회사가 아니란 점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무리 그럴싸한 주주제안을 하더라도 이에 동조할만한 주주들이 많지 않단 의미이다. 표대결을 펼쳐도 승산이 크지 않을 수 있단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은 끊임없이 공세에 시달리는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봐야 한다.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왜 멀어졌는지, 더 이상 개인투자자들이 삼성물산에 주목하지 않는지, 왜 외국인투자자들은 끊임 없이 주주제안에 나서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방어'의 논리로만 대응에 나선다면 언젠가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삼성물산의 건설·상사·리조트·패션 등 본업에 집중하는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역시나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고, 삼성전자의 대주주로서 위상이 더욱 부각하는게 사실이다.

    회사는 IR활동을 통해 각 사업부문별 성과와 비전을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주주들이 가장 관심갖고 눈여겨보는 배당은 사업의 실적과는 무관하다. 삼성물산의 배당은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배당금에 전액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본업에서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봐야 주주들에게 돌아오는건 없단 의미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고꾸라진 올해는 삼성물산 역시 최소 배당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본업의 성장 동력은 줄었고, 지배구조개편을 통해 확실한 지주회사로 자리잡지도 못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재 상황을 타개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위상을 공고히할 구심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팰리서캐피탈, 화이트박스(Whitebox Advisors LLC),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City of London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 Limited) 등에 앞서 삼성물산은 행동주의펀드 원조격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에 홍역을 치른바 있다. 2015년 엘리엇은 주주제안을 받았다. 단순히 외부의 공세로 치부하며 비방전에 열을 올렸던 삼성물산은 결국 비밀합의를 통해 7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지급했고, 아직도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삼성물산의 대처는 외국인투자자들이 공격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단 빌미를 제공했다.

    엘리엇의 공격 이후에도 삼성물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업가치, 조직문화, 주주환원, 사업구조 등 어느 한가지 뚜렷한 개선점을 찾기 어렵다. 2018년 마찬가지로 엘리엇의 공세에 시달렸던 현대차그룹이 불과 5년새 실적과 조직문화, 주주환원등 환골탈퇴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19일 "(삼성물산과 관련한 헤지펀드의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내용을 알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의견을 전달하거나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을 향한 점검과 진지한 고민은 주주들의 제안에 '후행'할 과제가 아니다. 경영진이 나서지 않는다면, 준감위가 앞장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삼성에 어울리지 않는 디스카운트란 단어를 떼내고,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그룹 차원의 선제적인 조치가 있어야만 삼성은 외부 투자자들의 공세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