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불안한 전망에 잇따라 국내 부동산 매각…수혜는 외국계가?
입력 24.01.02 07:00
기관들 '지갑 닫는' 연말에도 부동산 파는 국민연금
고금리에 자산 운용 전략 보수적…비핵심자산 매각
수혜는 외국계가?…조달 힘든 국내 운용사들은 머뭇
  • 자본시장 큰손인 국민연금이 국내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잇따라 매각하고 있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해외부동산 손실이 걱정인 가운데 국내 자산 운용 전략도 보수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해 매각 속도전을 벌이면서 그 수혜를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주요 출자자인 부동산펀드가 서울 여의도 하이투자증권 빌딩을 매각 중이다. 매각 자문사는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존스랑라살(JLL)로 지난 22일 케펠자산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입찰에는 케펠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페블스톤자산운용 등 7개 사가 참여했다.

    하이투자증권 빌딩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국민연금의 투자를 받아 지난 2011년, 2400억원에 인수했다. 현재 알려진 케펠자산운용의 인수희망가는 3550억원으로 약1150억원의 매각 차익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케펠자산운용은 매수 희망가로 3.3㎡당 2350만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진다.

    돈이 잘 안 모이는 연말에도 거래가 진행되며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매각 주관사는 매수 의향자의 자금조달 계획과 클로징 능력을 중요하게 보는데, 연말로 갈수록 기관들이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을 고려해 소위 '지갑을 닫는다'. 자금조달 능력을 증빙하기 위해 LOI(투자의향서)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녹록지 않은 환경인 셈이다. 이를 아는 매각자 측에서도 공개 매각을 연말에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매각 속도전을 벌이는 원인은 달라진 운용전략이 꼽힌다. 올해 들어 국민연금은 국내에 장기보유 중인 비핵심자산을 매각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컨대 씨티뱅크센터, 골든타워, 하이투자증권 본사 등 국내 오피스가 줄줄이 매물로 나왔다. 오래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매각하고 신축 또는 트로피에셋(지역의 상징적인 자산) 위주로 자산을 꾸리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이번 하이투자증권 매각에도 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장기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신축·트로피 자산 위주로 신규 자산을 편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국내 자산을 리밸런싱하고 있기 때문에 업계에선 매각가가 조금 낮을지라도 하이투자증권 매각이 성사될 것으로 봤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골든타워 매각도 함께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대신자산신탁에서 마스턴투자운용으로 우선협상자가 바뀌는 등 과정이 순탄치 않다. 마스턴투자운용에 우선협상을 위한 MOU(양해각서)기간을 한 차례 연장해 줄 만큼 매각 의지를 보였지만 마스턴투자운용이 인수대금 모집에 실패하자 수의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수의계약은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계약 담당자가 선택한 특정인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다.

    해외 상업용 오피스가 우후죽순 가격 하락에 직면한 가운데 견조해 보이는 국내 오피스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영향이다. 고금리로 대출 비용이 비싸진데다 수익률도 채권만 못해 기관투자자들이 부동산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해외 부동산 손실로 대체 투자에 더욱 신중한 상황에서 국내 오피스 빌딩이 유독 견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피크아웃(정점을 찍고 하락)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울러 교직원공제회 등 다른 연기금 및 공제회도 국내 운용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전망이다. 교직원공제회는 센터포인트 강남이 준공되기 전 조기 매각에 나섰다. GBD(강남업무권역) 자산들을 재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관투자자들의 국내 부동산 포트폴리오 조정이 관측되는 가운데 그 수혜는 외국계 운용사가 볼 전망이다. 실탄이 두둑한 외국계 운용사가 딜클로징 능력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자금 조달 능력을 바탕으로 국내 우량 자산을 저렴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예상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그간 오피스 입찰 경쟁이 과열됐지만, 고금리 기조에 가격이 정점을 찍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번 하이투자증권 빌딩 매각가도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협을 선정된정된 케펠자산운용은 자금조달능력에 있어 타사 대비 우위를 보인 점이 유효했을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 운용 전략 변화를 외국계가 수혜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여의도에 위치한 신한투자증권 빌딩이 작년에 평당 3000만원에 팔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이투자증권 빌딩 위치가 이보다 떨어진다 해도 저렴하게 사는 거라 본다"라며 "케펠자산운용은 통상 보증금(매각가의 5%)도 내지 않기 때문에 유리한 조건에서 거래가 진행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