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 번"…롯데, 유동성 위기 차단 위해 메리츠와 '맞손' 연장
입력 24.01.10 07:00
롯데-메리츠 PF 차환용 펀드 '최대 2.4兆'로 확대 추진
외통수 상대 고금리 장사 시각…양사 기류 미묘했지만
부동산 침체 지속·태영건설 워크아웃…마땅한 대안無
  • 롯데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이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 관련 투자 협약을 이어가게 됐다. 작년 하반기 들어 양사 연합에 따른 실익이 모호해졌다는 평과 함께 연장 여부가 주목을 받았지만 재차 맞손을 잡는 게 낫다는 결론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 입장에선 건설발(發) 유동성 위기 리스크를 차단해야 하고 메리츠 입장에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탓이라는 평이다. 

    롯데건설은 1년 전 메리츠금융과 1조5000억원 규모 투자 협약을 체결했는데, 현재 당시 만든 펀드의 만기 연장과 함께 규모 확대를 추진 중이다. 롯데건설은 시중은행 등 1금융권 참여를 이끌어내 펀드를 최대 2조4000억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은 총액한도대출 형태로 롯데건설의 부족한 차환 여력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펀드 참여를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펀드는 롯데건설이 연대보증하거나 자금보충을 약정한 PF 우발채무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고안됐다. 각 사업장 PF 유동화 자산은 통상 3개월마다 만기가 돌아오는데 시장에서 차환이 이뤄지지 못하면 롯데건설을 시작으로 그룹 차원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으나 펀드에 담아두면 만기를 길게 늘이는 효과가 생긴다. 펀드 연장·확대가 이뤄지면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룹 차원에서 한 번 더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작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롯데와 메리츠 협력 관계를 두고 미묘한 기류가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한 번 더 맞손을 잡는 구도가 됐다. 

    당초 양사 투자 협약을 둔 시장 평가는 '메리츠금융이 외통수에 내몰린 롯데그룹을 상대로 고금리 영업을 펼친다'는 쪽에 가까웠다. 거래 구조를 고안했던 메리츠증권 외 다수 대형 증권사들도 롯데건설과 접촉했지만 메리츠금융 수준의 일괄 지원을 내걸 순 없었고, 롯데건설이 12% 수준 금리 조건을 받아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 한 관계자는 "선순위 대출이라곤 해도 단일 투자처에 9000억원을 투입하는 조건은 메리츠금융만 가능한 영업 방식"이라며 "다른 증권사였다면 투자 심의 통과는 물론, 롯데그룹과의 관계를 고려해 두 자릿수 금리를 보장받기도 어려웠을 테고, 여러모로 부러움 섞인 눈총을 많이 받은 거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롯데건설 역시 작년 하반기 이후 시장에서 메리츠금융이 부담한 9000억원을 대체할 금융사들을 접촉하기도 했다. 일부 투자사가 롯데건설과 접촉하긴 했지만 펀드 결성 이후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며 메리츠보다 우호적인 조건을 받아들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이후 태영그룹 전반이 몸살을 앓는 때 롯데건설이 사전에 시장 우려를 잠재울 필요도 커졌다. 작년 롯데건설이 메리츠금융과 투자 협약을 맺을 때 그룹 핵심 게열 전반은 현금 출자·자금보충 약정 형태로 지원에 나섰다. 이미 두 차례나 그룹 지원을 받아간 롯데건설이 1년 만에 또 유동성 위기에 처하는 데 따른 부담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룹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 자회사 롯데정밀화학은 3000억원, 롯데물산과 호텔롯데은 각각 1500억원 규모 후순위 대주로 참여했다. 롯데물산과 호텔롯데는 현금 출자 외 이자자금보충 등 신용보강도 제공했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당시 메리츠와 펀드를 만들기 전 그룹 계열 차원에서 1조원 가까이 지원했지만 그룹 신용등급이 휘청였었다"라며 "주력 계열사 실적이 올해 회복기에 접어든다 해도 매년 롯데건설에 돈을 지급해야 할 주주 관리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메리츠금융 역시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며 위험관리 부담이 늘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 이후 기존 주력이던 부동산 시장을 벗어나 자금난을 겪는 대기업·사모펀드(PEF) 운용사로 발을 넓혔지만 거래 성사가 쉽지 않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에서 일찌감치 회수한 자금을 계속해서 재투자해야 하는데 롯데건설과 같은 투자처를 찾긴 쉽지 않다"라며 "대기업이나 PE의 경우 메리츠 측이 원하는 조건을 끌어내려다 막판 무산된 사례도 적지 않다. 품은 많이 드는데 상대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결국 양사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협력이 한 차례 더 연장된 상황이다. 아직까지 연장 기한이나 금리, 추가 참여자 등 구체적인 조건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양사 모두 연장·확대 계획 자체에는 진정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