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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지난 50여년 동안 외부 인사에 회장직을 맡긴 사례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정권에 따라 수장이 교체된 역사가 길지만 대체로 '정통' 내부 출신이 발탁되며 순혈주의 전통이 유지됐다. 그랬던 포스코가 최정우 회장을 끝으로 순혈주의 장벽이 무너지게 될 거란 우려가 적지 않다. 한 번 장벽이 무너지면 외풍을 차단하기는 더 어려워질 거란 평이 많다. 역설적이게도 개입 여지나 빌미를 제공한 건 최정우 회장과 포스코 이사회로 보인다.
15일 경찰은 포스코홀딩스의 해외 이사회 사건을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로 이첩해 수사할 방침이라 밝혔다. 올초 검찰에 포스코홀딩스의 작년 8월 해외 이사회 의혹 고발장이 접수된지 보름여 만에 수사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경찰은 사건 중요도를 고려해 조만간 최 회장 등 피고발인을 소환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스스로 '국가대표 기업'이라 자처한 포스코 이사회로선 외유성 출장 의혹 자체가 부담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가 잘못 굴러왔다는 인상을 짙게 남긴다. 포스코 지배구조 문제가 이제는 외부에서 뜯어고쳐야 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식의 명분을 이사회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지난 연말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지적으로 인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소유분산 기업인 포스코홀딩스 대표 선임은 KT 때와 마찬가지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내·외부인 차별 없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발언 경로나 속내를 떠나 지적 자체는 타당한 면이 있다.
포스코는 그간 최고경영자(CEO) 선정시 셀프 연임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직 우선 심사제'를 따르다 작년 주총을 3개월여 앞두고 관련 규정을 손봤다. 현직 우선 심사제는 현 회장이 원하면 잠재 경쟁자보다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는 구조다. 포스코홀딩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이사장이 책임투자실, 주총장이라는 공식 절차를 무시하고 위와 같이 발언할 수 있었던 최대 배경은 결국 '주주에게 최선을 보장하지 못하는 포스코홀딩스의 기존 지배구조'였던 셈이다.
시장에선 김 이사장 발언이나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조사 모두 외풍의 일환으로 사실상 받아들이고 있다. 외풍이라면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최 회장이나 이사회 모두 이 같은 개입 여지를 차단할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실제로 작년 수장이 교체된 KT나 우리금융은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내·외부를 포함해 후보군은 대폭 늘리되 ▲검증 절차는 길고 복잡하게끔 손질했다. 이미 당시부터 포스코는 공공연하게 '다음 순번'으로 거론 중이었다.
포스코홀딩스도 작년 3월 '지배구조 개편 TF'를 꾸려 대응하긴 했지만 문제의 셀프 연임 관련 규정을 손 본 건 주총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지난 12월이었다. 현재 포스코홀딩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바뀐 규정을 따라 수십명 후보군을 추려내 평판을 조회하고 롱리스트, 숏리스트로 좁혀가는 과정을 반복 중이다. KT처럼 소유분산 기업 인선과 판박이란 평이 나온다.
겉으로 보면 현직 회장에만 유리하던 구조를 늦게나마 투명하게 뜯어고친 듯하지만 실질은 외풍에 더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이 많다. 외부 인사를 잔뜩 추천받아 평판 조회에 들어가는 순간 내부 출신에 불리한 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소위 평판 조회에서 부정이나 추문이 많이 불거지는 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평판 조회 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면 후보자 간에 투서 등 방식으로 네거티브 공세가 이뤄지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면 관 출신 등 이미 검증을 거친 외부 인사 밖에 남을 사람이 없게 된다"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출신 한 인사는 "정권 눈 밖에 났다는 투의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에서 인선 절차까지 손보다 보면 결국 내부에서 먼저 '차라리 정부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유력 외부 인사를 뽑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라고 말했다.
오는 17일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평판 조회를 마친 외부 후보자 롱리스트를 확정할 예정이다. 관련 업계에선 앞서 확정된 내부 롱리스트보다 이번에 추려질 외부 롱리스트 중 차기 회장이 나올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벌써부터 자천, 타천으로 외부 롱리스트 중에서 유력 차기 회장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포스코가 차라리 주주에게라도 사랑받는 기업이었다면 현 시점 바람막이 역할을 톡톡히 해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정우 회장과 포스코 이사회는 이마저 충분한 명분을 쌓아두지 못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홀딩스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때 최정우 회장의 장기 연임에 적합한 지주회사 장벽을 두른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당시 노조원을 막겠다고 주총장 진입을 막은 일화가 두고두고 회자 중이다"라며 "최정우 회장이나 포스코 이사회 역시 주주를 챙기지 않았으니 외풍이 주주 책임을 명분으로 삼았을 때 방어할 수단이 마땅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노트
포스코 50년中 한 차례 빼고 이어진 순혈주의 전통
최정우 회장 들어 삐걱…외부에 개입 명분 제공한 셈
외풍 차단할 기회 있었지만…결국 '외부' 유리한 구도
주주라도 편이었다면…"주총 참여 방해 두고두고 회자"
포스코 50년中 한 차례 빼고 이어진 순혈주의 전통
최정우 회장 들어 삐걱…외부에 개입 명분 제공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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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라도 편이었다면…"주총 참여 방해 두고두고 회자"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1월 16일 11:3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