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어질 대기업 자산 매각…'성장' 보다 '현금흐름', 인프라만 '각광' 전망
입력 24.01.25 07:00
SK·롯데·CJ 외 LG·현대차·한화·효성 등 매각 검토 多
메자닌 발행 막힌 데다 선거철 보조금 전망 불투명
'선택과 집중' 기조…화학 등 기존 주력 잠재매물行
국내외 자산 전반 검토 한창…팔 곳만 늘어나는 중
새주인 찾자면 성장성보단 인프라성 강조 주력 전망
  • 대기업들은 올해도 자산을 사들이기보단 파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지난해 숨 가쁘게 자산 효율화 작업을 펼쳤지만 자금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우려가 컸던 SK, 롯데, CJ그룹 외에도 국내외 자산 매각을 앞둔 대기업 목록이 늘어나는 중이다. 늘어난 지정학 분쟁으로 현대차그룹처럼 자금 사정과 별개로 해외 자산을 처분하는 사례도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 내 매각 일변도 행보로 일부 잠재매물은 벌써부터 성격이 겹칠 거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서 새 주인 찾기가 어려울 경우 결국 시장 추세에 맞춰 서로가 인프라 자산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매각 전략이 수렴할 전망이다. 

    현재 투자 업계에선 상반기 중 매물로 나올 대기업 국내외 자산 파악이 분주하다. 고금리가 길어지는 와중에 작년처럼 하반기 시중금리 인하 전망에 기대기엔 불확실성이 높고 2차전지 등 성장세를 보여 준 사업들은 기세가 꺾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증시에 기대 전환사채(CB)나 교환사채(EB) 등 메자닌 발행으로 부족 자금을 메울 수 있었지만 공매도까지 금지되며 현재는 창구가 닫겼다. 

    SK, 롯데, CJ그룹 등 지난해 매각에 주력했던 대기업은 물론 현대차, 한화, LG, 효성그룹 등이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엔 금리가 오르며 사업 확장에 따른 재무 부담이 매각 작업을 부추겼다면 올해부턴 대기업 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진 분위기다. 연초 재계 신년사 역시 이 같은 예고가 공통적으로 담겼다. 대기업들은 지난 4년간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맞춰 신사업 청사진을 마련해 과실을 누렸지만 각국 선거를 앞두고 계산속이 틀어지고 있다. 올해부턴 기존 주력 사업과 신사업 사이 비중 문제를 둔 고심이 불가피하단 평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2차전지나 태양광, 풍력 등 지난 수년 제조 대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채워준 신사업 전방 시장이 사실은 각국 보조금이었다"라며 "선거를 전후해 신사업 보조금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니 대기업 내에선 기존 주력 사업을 과감히 매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화학 관련 업종이다. 완성차 중심인 현대차그룹이나 일찌감치 빅딜에 나섰던 삼성그룹을 제외하면 주요 대기업 그룹사 전반이 발을 담그고 있다. 현재 효성그룹 NF3(삼불화질소)부터 베트남 PP(폴리프로필렌) 프로젝트 및 LG화학, SK지오센트릭의 납사분해설비(NCC)까지 석유화학 공급사슬 전반에서 매각 등 유동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NF3처럼 반도체 등 고부가 업종을 전방으로 둔 특수가스 사업의 경우 일찌감치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 경영권 매각 외 소수지분 투자유치 등 여러 유동화 방안이 거론된다. 에어퍼스트에 이어 NF3까지 호응을 얻고 나면 꾸준한 현금흐름을 보이는 화학 소재 사업의 유동화 작업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높다. 

    반면 해외 생산법인의 경우 국내 대기업들이 현지 공백을 노리고 직접 키워낸 자산들인 만큼 각지에서 새 주인을 찾기는 수월해도 제값을 받긴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다. 최근 롯데케미칼도 지난해 매각에 나섰던 파키스탄 법인 거래가 무산되기도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현대차그룹의 러시아·중국 공장 매각처럼 지정학 분쟁이나 현지 공정당국 문제로 헐값에 사업을 정리하는 사례도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보조금 변수 외에 최저한세 도입 등도 국내 대기업의 해외 자산 고민을 높이고 있다"라며 "올해 대기업 매각 자문에선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 갈등에 대한 조정 업무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기업 전반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각 일변도로 나서는 데 따른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갈 곳이 마땅찮은 상황에 대기업들이 내놓은 매물 전반이 인프라 성격만 강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일찌감치 나온다. 성장성보다는 꾸준한 현금흐름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식이다. 

    올해 내놓을 자산들의 몸값이 조 단위에 형성돼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진다. 당장 효성화학의 NF3나 LG화학의 여수 제2 NCC 등 잠재 매물 외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매각이 확정된 에코비트 모두 장부가로만 조 단위 가격이 형성돼 있다. 새 주인을 찾자면 국내 인프라 자산에 관심이 높은 외국계 기관투자가나 이미 관련 포트폴리오를 손에 쥔 PE 업계를 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M&A 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에 대기업, 중소기업에서 성사시킨 매각 거래는 반도체나 2차전지처럼 현금흐름이 뚜렷한 곳으로 한정됐는데 이마저도 규모는 5000억원 전후였다"라며 "현재 나올 매물들은 몸값으로 보건, 시장 추세로 보건 막판에는 모두가 장기 보유에 적합한 인프라 자산으로 포장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