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손실규모 눈덩이…은행도, 투자자도 배상기준안만 쳐다본다
입력 24.01.25 07:00
홍콩ELS 손실률 50% 넘어…금액 2300억원 육박
배상기준안 시일 걸릴 듯…불완전판매 요소 복합적
은행권, 홍콩ELS 여파에 골머리…사적화해 등 과제 산적
  • 홍콩H지수 ELS(주식연계증권) 손실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은행들이 금융당국이 내놓을 대책 방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홍콩 ELS 관련 배상기준안을 토대로 향후 충당금 규모나 사적화해 여부 등 결정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투자자들을 비롯해 영업점에서도 역시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와는 결이 다른 탓에 쉽게 배상규모를 예단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지난 19일 기준 홍콩ELS 관련 이달 만기 손실액은 약 23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4개 시중은행의 홍콩 ELS 만기 손실률은 50%를 넘어섰다. 지난 8일부터 첫 원금 손실이 확정됐고 이후 11거래일 만에 손실액은 무려 2000억원을 넘어섰다. 23일 기준 홍콩H지수는 5000대 초반으로 올해 들어서만 11% 넘게 하락 중이다. 

    홍콩ELS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현장검사 및 배상기준안 수립은 아직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 8일부터 홍콩 H지수 ELS 주요 판매사 12곳을 순차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은행은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5곳, 증권사는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 등 7곳이다. 업권별 최대 판매사인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부터 검사에 착수했다. 

    금융당국은 검사결과를 토대로 2~3월 배상기준안 등 대책방안을 결론 지을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선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홍콩ELS 상품 판매규모가 그간 불완전판매로 거론됐던 상품과 비교해 큰 데다 상품 자체의 결함보다는 불완전판매 요소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불완전판매를 가늠하기 위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기본적인 연령, 재가입율 외에 판매 상황, 가입자의 직업이나 재산규모 등 여러 요소를 따져야 한다. 가입자가 해당 상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었느냐가 관건인데, 이를 판단하기 위한 요소로 금융권 직업 여부, 과거 투자 이력 등을 살펴봐야 한다. 이처럼 가입자별로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데 불완전판매를 판단할 변수가 많은 만큼 배상기준안 도출까지 시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은행권으로서는 속이 타는 상황이다. 배상기준안이 나온 후에도 은행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우선 충당금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배상규모에 따라 향후 어느정도의 충당금을 쌓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또, 금융당국의 배상기준안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인다면 어느 수준으로 확정지을지도 관건이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로서는 ELS 관련 여파가 얼른 해결되길 바라고 있지만 아직 배상기준안이 안 나온 상황”이라며 “충당금이나 사적화해 등을 결정하려면 배상기준안이 먼저 나와야 해서 은행들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 사이 투자자들의 손실은 커지고 있다. 이에 ELS 판매사의 PB들에게 투자자들의 환매 문의도 빗발치는 상황이지만, 환매수수료를 고려할 때 이마저도 쉽지 않단 설명이다. 판매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환매수수료는 통상 5%정도인데, 가입후 6개월 이내일 경우엔 10%까지 늘어난다. 펀드와 채권 등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 금융사의 PB는 "H지수가 자고 일어나면 하락하다보니 오죽하면 '1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고객들이 환매 문의를 해오지만 수수료를 고려할 때 섣불리 권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지수가 반등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권에서는 섣불리 사적화해 등 손실 보전을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 배임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 우리은행은 사적화해 결론을 두고 이사회 설득 등 상당한 시일이 걸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홍콩ELS는 가입자수와 규모가 큰 만큼 은행 내에서도 배상여부 및 규모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홍콩ELS 대처 외에 향후 상품 판매를 두고 내부통제 강화 방안에도 힘써야 한다. 책무구조도 도입은 물론,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요인으로 지목했던 핵심성과지표(KPI)도 손보고 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상품 판매를 담당한 WM(리테일)부서 외에, 법률 문제를 담당하는 준법감시나 소비자보호부서 역시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는 전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그간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내부통제를 강화해 녹취나 서류 서명 등 기계적인 절차는 다 마련해왔다”라며 “홍콩H지수 사태와 관련해 직원들의 권유가 강요적이었는지 여부와 이를 통해 은행 내부통제 미비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