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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사업 불안이 커지고 있다. 독일 대형 상업용 오피스 트리아논 빌딩의 가격이 급락했고,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내놓은 유럽 아마존 물류센터도 새 주인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 사업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태영건설ㆍ롯데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과 함께하는 개발 건에서 일부 손실이 발생했다. 조(兆)단위의 대형 프로젝트는 첫삽도 뜨지 못한 상황에서 대출 만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지스는 지난 2018년 펀드 자금 약 3500억원과 현지 대출 5500억원(3억9000만유로)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트리아논(Trianon) 빌딩을 매입했다. 작년 말 대출 만기가 다가왔지만 금리 인상과 현지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 증가로 자산가치가 30% 넘게 떨어지면서 현지 대출 연장에 실패했다.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시도했으나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지스는 대주단과 3개월의 대출 유보계약을 체결했다. 채무 조건은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는 2월 28일까지 대주단들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유예한 셈이다. 다음달까지 자산을 팔거나 이지스가 700억원 이상을 추가 출자해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해도 이지스는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약 5500억원에 인수했던 영국 브리스톨,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3곳의 아마존 물류센터도 오는 7월 투자 펀드 만기가 도래한다. 이지스는 만기 연장이 아닌 투자금 회수를 우선 목표로 삼고, 최근 국내외 운용사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 물류센터 자산은 아마존과 30년 장기임차 계약이 맺어져 있다. 장기 보유할만한 우량 자산이지만 최근 부동산 펀드들의 평가손실이 커지며 이지스가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투자 원금을 10% 이상 손상할 경우 매각보다는 연장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상업용 오피스나 물류센터 모두 감정평가 기준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지면서 원하는 가격에 매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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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동산 자산을 담고 있는 이지스 펀드들도 평가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롯데건설과 함께 추진했던 삼부빌딩 재개발 사업이 '부지 공매'까지 흘러간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공사 롯데건설은 금리 인상으로 공사비 부담이 커지자 투자금 100억원 전부를 손실 처리하고 사업에서 빠졌다. 이에 이지스는 공매로 해당 부지와 건물을 팔았는데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 워크아웃도 이지스 펀드의 부실화 우려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지스 주주이자 시공사인 태영건설(이지스 지분율 5%)과 함께하는 서초동 백암빌딩 일대 개발사업은 공사 진척률이 30%대에 불과하다. 해당 사업에 대한 태영건설의 채무보증 액수만 4000억원이 넘어 EOD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지스 펀드는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약 1조1000억원을 들여 용산 ‘밀레니엄 힐튼 서울’(힐튼호텔) 건물과 부지 등을 매입했다. 2027년까지 호텔을 허물고 오피스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를 짓는 것이 목표다.
개발 계획은 아직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건축인허가(건축심의 및 건축허가) 등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올해 5월 후순위 투자자(트랜치D)들의 PF 대출 2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현대건설이 이 트랜치D 대출원리금 전체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지고 있어, 현대건설의 재무상황에 따른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힐튼호텔 외에도 코람코자산운용과의 이태원 크라운호텔 개발사업, 메리츠증권 및 마스턴투자운용과 역삼 르메르디앙 호텔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다"며 "시장이 좋을 때도 호텔은 부담이 큰데 지금처럼 PF 시장이 악화된 사업에서 3개를 동시에 진행할 경우 연쇄 부실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힐튼 호텔 사업은) 지난 11월 서울시가 사업 계획을 가결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고, 다음 단계인 건축 심의를 원활히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국내 부동산 업계에서 이지스의 입지는 약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부동산 운용사 관계자는 "태영건설과 성수동 오피스ㆍ백암빌딩 등 다수 프로젝트를 실시한 영향으로 회사의 부실 펀드도 늘어날 것"이라며 "자산관리회사(AMC)가 PF 계획을 도맡아 건설사(시공사)와 투자자를 모집하는 국내 업계 관행상 일련의 이지스 펀드 부실은 시공사보단 이지스의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트리아논, EOD 간신히 막았지만 손실은 불가피
삼부빌딩ㆍ백암빌딩 등 건설업계 위험에 국내 PF도 불안
현대건설과의 힐튼호텔도 '부담'…펀드 부실로 이어지나
삼부빌딩ㆍ백암빌딩 등 건설업계 위험에 국내 PF도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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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1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