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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판매한 수조원 규모 주식연계증권(ELS)의 손실 이슈는 작년 8월부터 수면 위로 올랐다. 하반기 홍콩H지수 기반 ELS의 조기상환이 잇따라 불발되며 만기 손실 가능성이 본격 언급됐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건 농협은행이었다. 농협은 지난해 10월부터 원금손실이 가능한 ELS 취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 당시만 해도 '대응이 과하다'는 시선이 없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홍콩H지수가 추가 급락하며 불안감이 증폭됐다.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겠다고 나섰다.
하나은행도 지난 22일 ELS 판매 중단에 동참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은행서 ELS를 판매 중지하는 데 공감한다'는 발언이 나오기 딱 일주일 전이었다. 금융위원장 발언 이후 은행들이 급박해지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도 30일 오후 2시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열고 ELS 판매 전면중단을 결정했다.
신한은행도 마찬가지로 30일 오후 3시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예정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홍콩H지수 및 최근 급등한 닛케이225 관련 상품 등 일부 상품 판매 중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ELS 판매 전면 중단에 나서며 신한 역시 전면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흘렀다.
30일 저녁,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ELS 판매를 전면 중단하지 않은 우리은행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우리은행은 입장문을 통해 ELS 판매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은행은 "타은행 대비 판매 및 손실 규모가 미미하다"라며 "지난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전부터 ELS 판매창구를 PB창구로만 제한하고, 판매인력도 필수 자격증을 보유하고 판매경력이 풍부한 직원으로 한정하는 등 상품판매 창구와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입장문에 따르면 ▲문제가 된 홍콩H지수 관련 ELS 판매 규모가 작아 손실 위험이 작고 ▲전문 인력 중심ㆍPB창구로만 판매 등으로 관리가 가능하다가 이유로 꼽힌다.
반론이 적지 않다. 판매 규모가 작으니 '손실위험이 적다'는 게 아니라 '더 빨리 판매중단을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박이 우선 나온다. 다른 은행들은 판매량이 워낙 많아 연간실적과 충당금 고민을 하다가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겨우 수백억을 판매했으니 일찌감치 판매중단이 가능했는데도 불구,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전문인력' 부분도 도마 위에 오른다. 타 은행들도 이미 ELS 상품은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증을 갖춘, 시니어 이상 인력들이 판매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차별점은 PB창구를 통해서만 판매를 했다는 부분. 그러나 다른 은행들도 PB센터 혹은 일반 영업점이라도 자산운용 전문창구나 VIP라운지 등을 통해 팔아왔다. 우리은행이 대단히 뛰어난 차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은행이 이런 선택을 한데 몇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자신감' 혹은 '도덕적 우월감(?)'이 꼽힌다.
사실 우리은행은 ELS사태 이전, 금융지주사 수장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든 파생결합펀드(DLF)사태, 그리고 라임펀드 사태까지 모두 겪었다. 당시 엄중한 분위기와 우리은행이 처한 위기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된다.
따져보면 우리은행 이 ELS 상품을 다른 은행보다 적게 판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른바 "팔고 싶었어도 못 팔 상황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2020년 DLF 사태를 겪으면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불과 1년 뒤인 2021년 1월엔 라임펀드 관련 은행 제재심이 시작됐다. 빠짐없이 연루된 우리은행은 이후에는 파생상품을 팔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조성되지 않았다.
마침 이 시기가 국민과 신한이 홍콩H지수 관련 ELS를 몰아서 팔던 때였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홍콩H지수 관련 ELS 상당수가 2021년 상반기 판매된 상품들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은행은 국민처럼 대규모로 ELS를 팔 상황이 아니었다.
복수의 우리은행 현장 실무자들은 "당시엔 소비자 보호가 핵심 화두로 떠오르며 '사고치자 마라'가 핵심 영업 지침이 됐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다보니 국민은행의 올해 만기 예정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은 6조7000억여원에 달하지만, 우리은행은 410억여원에 불과한 상황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되레 "1위, 2위 시중은행이 못 판다고 해도 우리은행은 ELS를 팔 수 있다"는 도덕적인 근거와 정당성, 혹은 명분을 본인들이 가진 모양새가 됐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감독당국의 시선이 무서운 상황에서도 "우리은행은 고객의 선택권을 존중합니다"라는 과감하고(?) 자신감 넘치는 입장표명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차라리 '고깝다'라는 수준에 가깝다.
일단 우리은행이 KB나 신한보다 '리스크 관리'가 뛰어나다라고 선언할 수 있느냐에 대해 부정적이다. 우리은행이 '불완전판매'에 얽매였던 이력은 다른 은행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대다수 은행들은 '다른 은행이면 몰라도, 우리은행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느냐', '할 말이 많지만 안 한다'는 등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손실이 확정되고, 다른 모든 은행들이 ELS 판매를 중단한 마당에 우리은행 혼자서 '고객의 선택권'이라며 ELS를 판매한다고 해서, 이제 와서 누가 창구를 방문해사겠느냐는 반응도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ELS 사태와 관련해 손실 규모가 작아 자신만만해 하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보였다"며 "ELS 신탁 상품 판매를 유지한다 해서 지금 우리은행으로 거래를 옮겨 ELS에 가입할 고객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리은행의 실효성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후환'에 대한 걱정도 있다.
어쨌든 금융위-금감원 등 감독당국은 물론, 검찰까지 나서 은행과 증권사 옥죄기에 나선 상황이다.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기 쉬울 상황이라는 것. 이 상황에서 우리은행의 '자신감'은 자칫 독(毒)이 되지 않을까라는 시선이다.
아무리 임종룡 회장이 모피아 출신에 낙하산 인사로 후광효과를 누린다고 해도 굳이 이런 리스크를 질 이유가 있느냐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감독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정면반박(?) 모양새까지 취한 우리은행에 끝까지 호의적일까.
우리은행은 "ELS 판매를 현재와 같이 유지하되, 금융당국의 투자상품 개선방안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맟춰서 추가적인 판매정책을 정비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취재노트
4대은행 잇따라 ELS 전면 판매 중단 선언하는데
DLF 사태로 이미 파생상품 판매 극히 제한해
ELS 이슈 피하고 '도덕적 우월감' 내비치는듯
타 은행선 시큰둥..."자신만만한 태도 인상적"
4대은행 잇따라 ELS 전면 판매 중단 선언하는데
DLF 사태로 이미 파생상품 판매 극히 제한해
ELS 이슈 피하고 '도덕적 우월감' 내비치는듯
타 은행선 시큰둥..."자신만만한 태도 인상적"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1월 31일 13:2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