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동…이미 시작된 현대차·기아 주가 경쟁
입력 24.02.01 07:00
현대차·기아 몸값 격차 장중 300억 이내까지 좁혀져
정부 정책 앞두고 PBR 1배 이하 종목 관심 높아지며
정책 조건 부합하는 현대차·기아 주목도 올라간 상황
환원율 30%로 비슷…자사주 활용 등 양사 경쟁 기대
  • 정부가 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도입을 예고하며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 경쟁이 예고된다. 일본처럼 정책을 동원해 국내 상장사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관리하겠단 건데, 양사는 국내 대형주 중 ROE는 높은데 PBR은 1배에 못 미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분류된다. 사업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그룹 내 형제 격인 만큼 주주환원 전략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1일 기아는 장 막판까지 주가 상승세를 어이 간 끝에 현대차의 시가총액을 역전했다. 이날 현대차 주가 역시 전일보다 2.42% 오른 19만4600원에 마감했지만, 기아 주가는 5% 올라 10만2900원을 기록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종가 기준 기아의 시가총액은 41조3703억원으로 현대차(41조1640억원)를 약 2000억원가량 앞지르게 됐다.

    국내 증시에서 낮은 PBR은 해묵은 주제로 통해 왔지만 현재 금융위원회 등 당국 차원에서 PBR을 중심으로 한 증시 부양 정책에 힘을 실으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는 코스피 전체 PBR이 상장사 자산가치 총액에 미달하는 0.9배 수준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에 비해 극심한 저평가가 고착화한 편이다. 

    운용사 한 관계자는 "국내에선 상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일본 수준의 강제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긴 어렵지만 이미 기관 차원에서 저 PBR 기업을 선별해 정책에 올라타는 운용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라며 "한국거래소 차원에서 대형주 중심으로 공시 등 방식으로 계획을 내놓으라 권고하는 방안 또는 저PBR ETF 상장 등이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 2월 중 구체적인 정책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벌써부터 현대차와 기아 주가에 대한 시장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국내 대형주 중 ROE는 높지만 PBR은 낮은 대표 종목으로 꼽힌다. 최근 주가가 오르며 31일 종가 기준 각사 PBR은 약 0.55배, 0.9배 수준을 기록했지만 종전엔 각각 0.5배, 0.8배 수준에서 거래돼 왔다. 둘 모두 PBR 1배를 밑도는 것이다. 연말 실적 기준 ROE는 13.52%, 21.6%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덩치가 크고 수익성도 좋은데, 시가총액은 자산가치보다 낮게 책정돼 있는 셈이다.

    증권사 시황 담당 한 연구원은 "연초부터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대형주 수급 측면 변화가 극심한데, 추진 중인 PBR 끌어올리기 정책의 목표 중 하나로 현대차와 기아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라며 "대형주가 주축이 될 텐데, 양사 실적이 좋은 만큼 쓸 수 있는 카드도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라고 설명했다. 

    통상 완성차 기업은 내연기관차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던 만큼 PBR 멀티플(배수)이 각국 증시 평균 아래에 형성돼 있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테슬라와 같이 이례적인 성장률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PBR 기준 높은 멀티플이 반영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다. 지난 3년 전기차로 인한 시장 급변기 현대차와 기아를 포함한 일부 기업 주가가 널을 뛰기도 했지만 대체로 할증분을 토해내며 제 자리로 돌아온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테슬라를 제외한 글로벌 주요 완성차 기업의 평균 PBR은 약 0.6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현대차는 이보다 낮고, 기아는 높다. 전통 완성차 기업 중 PBR 1배를 넘는 곳은 일본 도요타 정도뿐이다. 시장에선 현대차나 기아가 현실적으로 PBR 1배 수준까지 주가를 끌어올리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지만,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군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현대차나 기아가 주주환원 정책에서 변화를 줄지 기대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이미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실적 발표와 함께 결산 배당을 확정하며 지난해 각각 25% 수준의 배당성향을 달성했다. 자사주 매입·소각을 합하면 30% 안팎의 환원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의 경우 오는 3월까지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추가 매입한 뒤 이 중 절반을 소각하기로 약속했는데, 올해 실적에 따라 잔여분을 모두 소각할 가능성도 열어두며 현대차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룹 승계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주가 부양이 조심스러울 수 있지만 맏형 격인 현대차 몸값이 기아에 역전당하는 것 역시 부담일 수 있다. 정부 정책을 계기로 현대차와 기아가 자사주 매입·소각 등 방식으로 주가 경쟁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증권사 완성차 담당 한 연구원은 "산업 특성상 단기간 내 실적을 끌어올리긴 어렵고, 예정된 투자 계획을 감안하면 무작정 배당을 늘리기도 어렵다"라며 "결국 자사주 매입·소각 등 방식이 유력한데,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PBR을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가로 내놓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