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안팎에서 '살얼음판'…벌써 위기론에, 시장에선 '올해 매물 쏟아진다' 준비
입력 24.02.04 07:00
'관리' 역할 강해진 SK㈜…투자 사실상 중단
최창원 부회장 주도 하에 고강도 ‘긴축’ 기조
투자자산들 '돈먹는 하마'가 문제의 근간
해결책은 '매각'…시장선 'SK발 일감' 기대감↑
  • 최근 SK그룹 전반에서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연말 '쇄신 인사'를 단행한 후 그룹 2인자로 올라선 최창원 부회장 주도로 고강도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과거 '확장 기조'는 완전히 철회됐고, 활발하던 SK의 투자는 올스톱 된 분위기다. 이에 더해 지난 수년간 방만하고 무분별했던 투자들에 대한 책임론마저 거론되고 있다. 

    자연히 올해 투자업계 최대 화두는 SK그룹 전반의 '자산매각'과 '유동성 확보'다. 이미 사모펀드(PEF)들은 어떤 매물을 인수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검토하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 요인들도 거론된다. 일단 '11번가 사태'로 "SK그룹 매각 거래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투자시장에서 형성됐다. 더 큰 고민은 지금 SK그룹이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몇몇 비핵심 자산매각만으로 위기 극복이 가능한가라는 우려다. 이미 시장 일각에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그룹 핵심 계열사 매각의 필요성마저 제기된다. 

    SK(주)ㆍSK스퀘어 등 조직개편ㆍ임원 충원…방만한 투자 '책임론'도  

    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최근 기존 투자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조직개편 계획은 작년말 인사와 함께 수펙스추구협의회의 투자 기능을 SK㈜로 모으는 형태로 정리됐다. 이후 SK㈜는 투자기능보다는 그룹 전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해진 모습이다. SK㈜에서 투자를 담당하던 팀들이 '사후관리' 역할을 하는 팀으로 바뀌며 투자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파악된다.

    과거 조대식 부회장이 리드하던 '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 그리고 박정호 부회장 산하로 관리되던 'SK텔레콤ㆍSK스퀘어' 등 그룹 내 이원화 됐던 관리체계도 다시 통합되는 분위기다. 이제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은 최창원 부회장의 단일 지도 아래 각 사업부 전반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룹의 체질개선 작업이 시작됐다.  

    고강도 긴축과 계열사들의 방만경영에 대한 지적도 쏟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열사들은 예산, 인센티브 체계 등 전 부문에서 긴축경영 돌입에 분주하며, 계열사별로 비용 절감 경쟁이 붙을 정도다. 과거 SK에서 관리하는 전세기 사용내역 등을 포함, 그룹 최고경영진이 사용한 경비 내역을 검토한 뒤 최 부회장 등이 크게 불편함을 표현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최창원 부회장의 청교도적(?) 성격이 반영됐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담당 임원들의 헤게모니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포트폴리오 정리' 대상 1순위인 SK스퀘어가 대표적인 경우다. 

    SK스퀘어 투자조직은 투자를 담당하는 'CIO 그로스(CIO Growth)'와 기존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는 'CIO 트랜스포메이션(CIO Transformation)'으로 재편됐다. 2년 전인 2022년에 맥쿼리 IB 출신인 하형일 11번가 대표가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으며 단독으로 조직을 이끌었으나 이번에 이원화됐다. 투자담당은 하형일 CIO가 그대로 맡지만, 포트폴리오 재정비 부문은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2018년에 SK합류한 송재승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새로 총괄한다. 

    표면상으로, 또 회사가 밝힌 바로는 '이원화 체제'지만 실질적으로는 하형일 CIO의 힘이 크게 빠지고, 송재승 CIO에게 SK스퀘어의 '골치아픈' 투자매물을 싹 정리하는 역할을 맡긴 것으로 읽히고 있다. 과거 박정호 부회장ㆍ하형일 대표 체제 아래서 진행된 SK스퀘어의 투자 건들이 전반적으로 '실패'로 낙인 찍힌 것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계열사 CEO가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토요 사장단 회의'도 24년만에 부활했다. SK㈜·SK하이닉스·SK텔레콤·SK이노베이션 등 SK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내달부터 2주마다 토요일에 '전략글로벌위원회의'를 열고 그룹 경영을 논의할 예정이다. 임원들은 매달 두 차례 금요일에 쉬는 유연근무제도 반납하기로 했다. 상부의 보고 압박에 임원들이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경우가 잦아진 분위기가 전해진다. 

    SK그룹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SK㈜ 내부에서는 투자의 '투'도 언급이 금기시되는 정도"라며 "투자 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 해당 인력 다수가 관리 조직으로 옮기거나 타 계열사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비핵심 자산매각으로 충분?…이미 시장에선 '초대형 매물' 필요성도 거론

    이런 기조 하에 SK그룹은 올해 자산 효율화 작업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룹 내 밸류체인에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시장 내 인기가 좋은 인프라성 자산들 위주로 매각과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다만 최근 11번가 사태는 걸림돌이다. "두산그룹도 아니고, SK그룹조차 FI와의 계약을 감당하지 못한다"라는 인식이 생겼다. 여기에 국내에서 가장 큰 투자자인 국민연금을 등졌다는 점은 SK에게도, 투자자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SK가 매각하는 매물에 대해 사모펀드(PEF)가 투자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주주간계약을 맺는다고 할 경우. "11번가처럼 콜옵션까지 걸어놨어도 안전성을 보장하지 어렵지 않느냐"라며 펀드 투자자(LP)들의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SK가 생각보다 냉정한 시장에 놀랐고, 그룹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라며 "다만 일부 LP들은 'SK관련 딜들은 가져오지 마라'는 주문도 할 정도여서 (신뢰 회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심자산 매각의 성과가 빠르게, 안정적으로 보여져야만 시장의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다는 부담감도 있다. 이미 투자시장과 은행권에서는 SK그룹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적지 않은 상태다. 이들이 걱정하는 위기감은 ▲조단위 투자금을 받은 SK온에 얼마나 추가 투자금이 필요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11번가를 제외하더라도 그간 숱한 FI들로부터 받은 투자금 '수익보장'은 어찌 감당할 것인가 ▲SK 각 그룹 계열사들이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들에 연이은 적자가 발생하면 결국 추가증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 자금을 어디서 조달하는냐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SK그룹 내에서 이런 자금소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계열사는 극히 손에 꼽힐 정도다. 

    이로 인해 시장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마저 거론되고 있다. 몇몇 자산매각으로 충분하지 않을 경우, SK그룹 내 핵심 계열사를 매각대상으로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올해는 SK그룹 딜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금융사, 자문사, PEF 등 업계에서는 SK발 매물 출회 기대감도 오르고 있다. 지난해 딜(deal) 기근이 이어진만큼 올해 대기업 구조조정발 매물 출회 기대감에 신발끈을 묶고 있는 곳들이 많다. 금융사 인수금융 부서에서는 'SK 딜만 기다린다'는 말이 나올정도다.

    일단 국내 및 해외 대형 PEF들이 SK그룹의 긴축 기조를 그 누구보다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기업들은 긴축으로 돌아섰고, 대형 PEF 외엔 돈을 쓸 곳이 많지 않다.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 등 국내 주요 PEF들은 의미 있는 규모의 자금을 모았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투자 주기에 들어가고, 대기업 매물이 잠재 1순위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PEF들도 올해 한국 시장을 노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들은 국내 시장이 주무대인 국내 PEF들에 비해 소극적인 면이 있지만, 투자 실탄이 두둑한만큼 딜을 발굴해야 하는 필요성도 커졌다. 벌써부터 이들과의 거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 언급된 일부 계열사들뿐 아니라, SK하이닉스와 관련된 공급망 내 모든 계열사들을 비롯해 계속 자금을 투입해야하는 SK온 등 SK그룹 내에서 중요성이 큰 계열사들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