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사를 '정책 테마주'로 만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입력 24.02.07 07:00
취재노트
삼성화재 등 손보주 최근 대부분 52주 신고가 기록
실손 개편ㆍ책임보험 등 손보사에 유리한 내용 포함
구체적 시행 시점은 미지수...의사협회 등 반발 예상
"총선 앞두고 정부가 리딩방 돼 테마주 찍어주는 꼴"
  • 삼성화재 주가는 6일 29만3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앞서 지난 1일 시가총액 12조원에 달하는 대형주임에도 10% 급등하더니, 5일에는 장중 30만5000원에 도달하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작성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연 저점에서 불과 2주만에 25% 급등한 수준이다. 삼성화재 주가가 주당 30만원을 넘었던 건 5년 전인 지난 2019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삼성화재만큼은 아니었지만, 메리츠금융지주ㆍDB손해보험ㆍ현대해상 등 손해보험업 상장사들도 최근 주가 추이가 나쁘지 않았다. 6일 이른바 '저PBR주'가 전반적으로 조정을 받는 와중에도 손보사주는 비교적 보수적으로 움직였다. 조정에도 불구, 대부분 상장 손보사 현 주가는 52주 신고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손보주 주가 급등의 배경으로 1일 오후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지목한다. 그렇지 않아도 금융주 등 저PBR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와중에, 이날 발표 중 손보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며 '정책 테마주'화(化) 했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 패키지엔 그간 수 차례 가입자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편을 반복해온 실손보험을 더욱 '개선'하겠다는 방안이 담겼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건강보험정책과 실손보험정책 연계를 제도화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실손보험은 손보사들의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이다. 2018년 1조2000억원대였던 전체 보험사 실손보험 손실은 2019년 2조5000억원으로 불어났고, 2021년 2조8500억원까지 커졌다. 적자를 줄여준 건 정부의 정책 전환이었다. 보장은 줄이고 가입자 부담은 늘린 4세대 실손 보험이 2021년 하반기 도입되자, 이듬해인 2022년 국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실은 1조5000억원대로 크게 줄었다. 

    이번 개편안 역시 실손보험 적자 줄이기에 무게를 뒀을거란 예상이 시장의 중론이다.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를 동시에 진행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등, 주로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비급여 진료를 크게 줄이는 데 방점이 찍혀있는 까닭이다.

    더 큰 이슈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해 모든 의사 혹은 의료기관에 책임보험을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피해전액보상 종합보험이나 공제 가입시 의료인에게 공소제기를 하지 않고,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 처벌하지도 않는 반의사 불벌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과 같은 구조를 의료기관에도 갖추겠다는 뜻이다. 현재 의료사고 관련 책임보험 시장은 아직 활성화돼있지 않다. 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의료사고배상공제가 가장 큰 규모인데, 가입률은 의원급 34%, 병원급 19%에 불과하다. 

    이를 전체 의료기관으로 확산시 민간보험사의 진출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의료사고배상공제는 최대 보상 5억원 기준 연 보험료가 최대 1200만원(외과 기준)에 이르는데, 자본력과 영업력을 갖춘 민간보험사가 진출하면 보상 규모는 늘리고 보험료는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人)보험 경쟁력을 갖춘 손보사에 대규모 수혜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구체적인 시행 목표 일정조차 없는 '선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 중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설립해 1년 간 논의를 거쳐 정책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핵심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협의조차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의료계 일각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비급여 진료를 줄여, 의사들을 필수의료 부문으로 유도한다는 게 정책이라 볼 수 있느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직접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이른바 저PBR주들의 주가가 비이성적으로 오르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특정 업종에 일방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구체적 시행 시점조차 담기지 않은 정책을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민 없이 이런 방식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40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을 정부가 나서서 없앨 순 없으니 의료사고 책임보험을 의무화해 손보사에 새 먹거리를 주겠다는 뜻이란 해석도 나온다"며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리딩방이 되어 테마주를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