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출신 반장 선거처럼 흘러가더니…결국 돌고돌아 내부출신 내세운 포스코
입력 24.02.08 16:38
취재노트
경찰에 볼모 잡힌 후추위…외풍 허락 받기 위한 인선
우여곡절 끝 후보 뽑았지만 인선 전반 구설 불가피
SK·LG·현대차 출신 외부 3인 두고 대리전으로 흘러가더니
결국은 정통 '포스코맨' 내세워…시끄럽기만 했던 회추위
  • 국민기업 타이틀을 내려놓고 국가대표 기업이란 정체성을 내건 포스코의 새 리더십 선출은 반장 선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적임자를 가려낼 사외이사는 경찰에 넘겨졌고, 후보군에 오른 인사들은 SK·LG·현대차 등 민간기업 대리전이란 평까지 나왔다. 그렇게 한참 시끄럽게 돌아가더니 결국은 돌고돌아 내부 출신을 새 회장 후보로 뽑았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이틀에 걸친 차기 회장 후보자 6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을 최종 후보로 내정했다. 이날 포스코홀딩스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장 내정자를 내달 21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 후보로 추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외견상 주총 표결에 참여하는 주주 손으로 차기 회장을 뽑는 일만 남은 듯하나 시장 인식은 별개다. 지난 KT 사례처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6.71%)이 반대하면 새 리더십은 재차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정부-보건복지부 장관-국민연금-포스코홀딩스로 이어지는 실질 지배구조를 감안하면 나머지 주주 의중은 들러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약이 적지 않다. 

    일찌감치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 인선은 후추위가 정부 허락을 받아내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경영진을 견제·감시할 위치라는 명분마저 잃고 외풍에 종속된 사외이사들이 주주를 대리할 적임자를 가려낼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구도여서다. 

    현재 최정우 현 회장과 사외이사 7인을 포함해 호화 이사회 의혹 고발로 경찰 수사망에 오른 그룹 관계자는 16명이다. 이들은 캐나다, 중국 등 해외 현지 출장에서 그룹 자회사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출신 한 인사는 "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관치, 외풍에 비판적이던 인사들도 후추위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이 향응 의혹으로 명분을 잃었다는 시각이 많다"라며 "결국 후추위 안위를 위한 선택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처럼 이사회에 대한 주주대표 소송이 가능했다면 패가망신했을 것"라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후보 선정 단계까지 왔지만 그간 인선 과정은 두고두고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후추위가 내·외부 공평하게 3명씩 추려낸 파이널리스트 명단부터 각 후보군이 보여준 행보, 세간의 설익은 하마평까지 이미 촌극으로 비유되고 있다. 

    후보 6인 중 내부로 분류된 3명은 각각 김지용 포스코홀딩스 미래연구원장, 전중선 전 포스코홀딩스 사장,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이었다. 현직자로 한정하면 실질적인 내부 후보는 1명이고, 나머지는 포스코를 떠났던 인사로 꼽힌다. 정무적 판단으로 유력 후보였던 김학동·정탁 부회장은 명단에서 뺐지만 대신 이름을 올린 후보들은 사외이사들과 함께 고발당한 인사이기도 하다. 

    나머지 3명은 각각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유우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이다. 이들을 두고선 포스코그룹 인선이 SK와 LG, 현대차그룹의 대리전이냐는 말이 나왔다. 

    김동섭 사장이 후보로 공개됐을 때 안팎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김 사장은 로열더치쉘, SK이노베이션 기술총괄사장(CTO)을 거쳐 현재 석유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포스코그룹과의 교집합이라면 탄소포집·저장·활용(CCS·CCU) 등 친환경 사업을 키워낸 경력과 해외자원 개발 정도가 꼽힌다. 해당 사업은 김 사장이 SK그룹에 적을 두었을 때 구체화해 현재 SK이노베이션과 석유공사 모두 진출해 있다. 

    자연히 LG그룹 출신 권 전 부회장이 후보군에 오른 것과 맞물려 대결 구도로 비치게 됐다. 권 전 부회장이 후보에 오른 건 LG그룹에서 배터리 사업을 키워낸 경력이 주로 작용했겠지만 SK 역시 동일 사업에 진출해 있다. LG나 SK 모두 배터리 유관 사업에서 포스코그룹과 경쟁하거나 협력하며 밸류체인을 형성하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LG나 SK 모두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포스코그룹 계열과 협력하고 있는 데다 일부 사업은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광산 개발부터 원료 수입까지 담당하는 포스코그룹과의 연결고리가 있으면 향후 사업이나 자산 조정에서 도움을 받기 수월해진다. 그러니 대리전이 펼쳐진다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자는 처음 명단이 공개되자 인터뷰에 응하거나 측근 입을 빌려 포스코의 2차전지 및 친환경 사업을 겨냥한 출마의 변을 내놓기도 했다. ▲권 전 부회장은 본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김 사장은 친환경 미래 소재 발굴 역량을 활용해 포스코의 2차전지 사업을 고도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명단 공개 직전 포스코홀딩스가 실적 발표회(IR)에서 "새 CEO가 선임돼도 기존 2차전지 투자 계획, 사업 방향을 바꾸거나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입장과 맞닿아 있다. 리더십 교체가 그룹 기조 변경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취지로만 받아들이기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인상을 남긴 셈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출신인 유우철 전 부회장은 본업인 철강 산업 이해도에선 가장 강점을 지닌 후보이나 비교적 주목도가 낮은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강판·후판 등 철강 부문 가격 협상력 외 운송업 등에서 포스코그룹과의 잠재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유 전 부회장의 경우 포스코 내부에서부터 업계 내 후발기업의 전 수장을 꺼려한다는 기류가 새어나왔다. 

    달리 보자면 주인 없는 기업을 두고 종국에는 민간 기업들까지 눈독을 들인 정황으로 비쳐진다. 그간 세간에 흘러나온 설익은 하마평까지 포함하면 새 리더십을 확정하기도 전부터 시장의 피로감만 높아진 상황이다.

    그렇게 시끄럽기만 했던 포스코 회장 후보 선출은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게 돼버렸다. 언제나 그랬듯 내부출신이 선정됐다.

    장인화 내정자는 1988년 포스코 전문연구기관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으로 입사해 포스코 기술투자본부장·철강생산본부장·포스코 대표이사 사장을 거친 정통 '포스코맨'으로 분류된다. 지난 2018년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 당시 최정우 현 회장과 경합한 적이 있고, 권오준 전 회장 시절 실세로 통한다.

    포스코그룹 차원에선 원하던 대로 내부 출신이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가 됐으나 시장에선 벌써부터 후추위와 외풍 사이 정치적 셈법에 대한 추정이 오가기 시작했다. 장 내정자가 후추위 차원에서 이미 조율을 마친 인사라면 내달 주총까지 추가적인 이변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운 리더십을 펼치는 데는 제약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업계에선 새 회장 후보가 확정되자 포스코가 당장은 미래보단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수습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내부적으로 더 시끄러워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