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사태 정몽규 회장, 아시아나항공 인수ㆍ현산 사태서도 이미 예견됐다
입력 24.02.15 07:00
취재노트
공(功)은 취하고 과(過)는 피해
  • 연초 재계의 인물을 꼽자면 삼성물산 부당합병 1심 무죄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아니었다. 현 상황에선 단언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 전으로는 본업 때문에 시끄럽더니 지금은 축구 때문에 나라가 난리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김민재라는 역대급 라인업을 갖추고 60년 넘게 무관이었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했지만 4강전에서 요르단을 상대로 단 한 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Do this for me'라는 이른바 무전술의 '해줘 축구'가 국제적 망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고선 미소를 띤 채 입국을 했고, 예정보다 이르게 미국으로 떠났다.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는 전력강화위원회가 15일에 열리는데 클린스만 감독은 화상으로 회의를 참여한다. 초유의 사태다. 이에 정치권까지 클린스만 해임 목소리를 낼 정도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화살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쏠린다. 애초에 전임이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 때와 달리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해 말이 많았다. 선임 결정은 정 회장이 사실상 단행했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정몽규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시안컵 관련 임원 회의가 13일 오전에 있었는데 전일 밤 정 회장은 불참을 통보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없는데 회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결국 시민단체로부터 강요와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당하기까지 했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했을 당시엔 그렇게 자랑스럽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던 정 회장이 아시안컵 4강 탈락 이후엔 자취를 감췄다. 정 회장의 두문불출이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재계, 자본시장에선 어느 정도 예견됐었던 일이라고 보고 있다. 공(功)은 취하되 과(過)는 피하는 모습은 기업 경영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철거공사를 발주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2021년 6월 9일 해체 중이던 지상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근 시내버스 정류장을 덮쳐 9명이 숨지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2022년 1월에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201동 39층 타설 작업 중 23~38층이 무너져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해 공식 사죄했다. 사고 책임을 지고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룹 지주사인 HDC 회장직은 유지하겠다고 했다. 대주주의 역할은 다하겠다는 명목으로, 경영권은 유지한 것이다. 거기에 사고 직후 HDC가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분을 사들였고, 정몽규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엠엔큐투자파트너스가 HDC 보통주를 꾸준히 사들이면서 정 회장의 그룹 지배권은 더 강화가 됐다. 사고 후 형식적인 회장 사퇴, 행정처분 연기, 지분 매입 등 일련의 행위가 이어지면서 위기를 오너가 지배력 확대의 기회를 삼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에서도 뒷말이 많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을 때 만해도 정 회장은 전면에서 그룹의 비전을 알리는 데 빠지지 않았다. 건설, 유통, 레저에 이어 항공업까지 진출하게 되면 명실상부 종합그룹이 되고 현대자동차를 '빼앗긴' 서러움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2019년 시도한 아시아나항공 M&A는 이듬해 9월 아시아나항공 측이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계약 해제를 통보하면서 무산됐다. 이어 아시아나항공은 2500억원의 계약금 확보를 위해 HDC현대산업개발 측을 상대로 소송(질권소멸통지 등)을 제기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계약 무산의 책임이 있으니, 아시아나항공 측이 계약금을 소유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아시아나항공 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지난 2022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사건 인수계약은 피고(HDC현대산업개발 측)들의 귀책 사유로 적법하게 해제됐다"며 "피고들이 지급한 계약금은 (계약에 따라) 원고들에게 귀속됐다"고 했다. 이후 HDC현대산업개발 측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으로 5년째 진행형이다.

    로펌업계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보면 아시아나항공의 당시 상황이 충분히 그럴만 했고, 또 HDC 측이 충분히 아시아나항공을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명목상 허울에 빠져 꼼꼼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 이 모습을 다시 축구로 끌고 오면 또 기시감이 든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3월 승부조작 사범 등 기습적인 축구인 사면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협회 부회장 전원이 사퇴했지만 본인은 그대로 회장 자리를 지켰다. 당시 정 회장은 "부회장과 이사진이 전원 사퇴하는 상황에서 가장 책임이 큰 나 역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임기가 1년8개월 남은 상황에 협회를 안정시키고 임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 축구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축구협회장 임기는 2025년 1월까지다. 체육계에선 정 회장이 4연임에 도전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축구협회는 천안에 천안축구종합센터를 짓고 있다. 이것이 정 회장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게 연임의 중요한 '키'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의 완공 시점이 자꾸 밀리면서 코미디같은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대표팀 첫 소집이 있었는데 카타르로 떠나기 전까지 축구공을 만지지도 못했다. 평소 같으면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를 이용했겠지만 2024년 1월 대한축구협회와 파주시와의 계약이 만료돼 이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표팀 선수들은 서울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실내 훈련에만 매진해야 했다. 이 곳은 일반인 투숙객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파주NFC 연간 사용료 26억원을 아끼려고 생긴 촌극이다.

    인터넷 상에선 "정주영 명예 회장의 최대 업적은 현대자동차를 자신의 아들에게 넘긴 것이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정몽규 회장이 들으면 정말 치욕스러울 수 있는 얘기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사람은 정 회장이다. HDC현대산업개발 붕괴 사태,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같은 기업 경영상 발생하는 문제들도 그룹의 수장으로서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룹을 경영하든, 협회를 운영하든 최고책임자는 문제점은 정면돌파 하지 않으면서 달콤한 과실만 따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처럼 계속 무리수를 둘 경우 본인뿐 아니라 범(汎)현대가 전체에 "한국 축구계를 좀 먹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어줄 뿐이다.

    이 와중에 대표팀 선수들 간의 다툼이 외신을 통해 보도가 됐고, 이걸 축구협회가 이례적으로 빨리 인정했다. 이미 인터넷 상에선 손흥민과 이강인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정몽규 회장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선수들에게 돌리려는 물타기 언론 플레이가 아니길 바란다. 정말 그렇다면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