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빈자리 노리자"…FI 손잡고 해외 진출 꾀하는 기업들
입력 24.02.19 07:00
국내서 자본시장 활용 선구자인 SK
확장 기조 멈추고 투자 자산 정리 중
기업들 FI 활용 배워 해외진출 구상
"올해는 뭐라도 해야" PE들도 '윈윈'
  •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재무적투자자(FI) 활용에 가장 적극적이었지만 최근 긴축 기조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SK그룹의 자본시장 활용 방식을 접했던 대기업들이 FI와 손잡고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자금이 쌓인 사모펀드(PEF)들도 새 파트너를 찾아 거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간 국내에서는 SK가 FI 활용의 선구자였다. '확장'의 파이낸셜스토리 기조 하에 다수의 FI로부터 투자유치를 받거나, 공동으로 투자하는 건들을 성사시켰다. 다만 투자 포트폴리오들의 실적 부진, 일부 FI와 회수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빛이 퇴색하기도 했다.

    긴축경영에 들어간 SK는 과거 투자한 해외 자산도 정리하려는 분위기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베트남, 동남아시아 등에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려는 준비에 착수했다. 투자 성과는 부진한데 계열사의 유동성 부담은 커지니 회수에 나선 것이다. SK㈜와 계열사, FI가 투자한 에너지 포트폴리오 및 기업 투자 지분도 잠재적인 정리 대상으로 꼽힌다.

    SK의 FI 활용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전략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기업들도 나타나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FI 맛'을 본 선구자인 SK의 빈자리를 채워보려는 우량 기업들이 많다"며 "여러 기업들이 실탄이 많고 투자 실행 압박이 큰 대형 FI와 손잡고 해외로 나가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검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로 들어오려는 해외 기업과 자본이 줄어드는 상황에선 직접 해외로 나가 성장 활로를 찾아야 한다. 특히 드라이파우더가 쌓인 PEF들을 잘 활용하면 아쉬운 점을 보강해 '윈윈(win-win)' 할 수 있다. 한 기업은 PEF가 투자한 기업의 소수지분에 투자하는 식의 협력을 모색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많지 않지만, 점차 이런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SK가 과거 해외 에너지, 인프라 관련해서도 투자가 많았는데 성과가 미흡하다보니 이제는 회수 단계로 들어가려는 분위기"라며 "SK는 지금 주춤하지만 다른 기업들이 FI와 손잡고 해외에 진출하기 위한 검토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경향이 최근 해외 투자 건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FI들의 방향성과도 맞다는 평이다. 국내 M&A 시장은 아직 대기업 투자 유치건 등도 주춤한 상황이고, 성장성 담보가 어렵다보니 FI들 입장에선 LP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 PEF가 바이아웃 딜을 하기에는 아직도 매수자와 매도자 간의 가격 눈높이 차가 너무 크다. '검토'는 많지만 '성사'까지 가는 건은 극소수다. SK, 롯데, 카카오, CJ 등 자산 정리에 초점을 맞춘 대기업들이 내놓을 매물에 관심이 가는 상황이지만 의미 있는 거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러니 국내보다는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한 PE업계 관계자는 "아직 출자자(LP)들도 조심스럽고, 매각자와 매수자의 가격 눈높이 차가 여전히 크다보니 작년부터 해외에서 기회를 많이 찾아보고 있다"며 "동남아, 북미, 남미 등에서 오히려 국내보다 거래가 빠르게 진전되는 경우도 있어서 기업들과 손잡고 해외에 진출하는 방안도 다각도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업과 FI가 장밋빛 전망만 가질 상황은 아니다. 최근 SK그룹은 FI 자금 회수 문제로 거듭 애를 먹고 있다. 투자 후 회수 기에 상장하지 못하거나 시장이 급변하는 등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과거 기업들의 코퍼레이트 파트너십 펀드(코파펀드) 성적표도 좋지 않았다. 좋은 조건에 FI를 끌어들이려는 대기업과,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를 원하는 FI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