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내부서 불거진 엔비디아 협력 균열음…단순 해프닝일까
입력 24.02.20 07:09
취재노트
'HBM 협력 중단' 뜬소문으로 새나온 삼성·엔비디아 잡음
해프닝 치부하자니 시장 내 적지 않은 삼성 반도체 걱정
엔비디아 협력 성패, 평판 문제 넘어 경쟁력 근간 걸린 일
균열음 발원지 결국 안팎 불안감…또는 경영진 향한 실망
  • 삼성전자 내부에서 엔비디아와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협력이 중단 위기에 놓였다는 뜬소문이 불거졌다. 삼성전자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나 실제로 엔비디아가 가볍게 넘어가기 힘든 수준의 항의를 표한 것으로 확인된다.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력에 대한 시장 전반의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안팎에서 수십년간 누적된 삼성전자의 초격차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 시장 초입에서 내려진 경영진의 오판이 연쇄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의 일부 제품 공급 물량 및 계약 내용을 두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 난이도가 높고 수율 문제에 따라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산업 특성상 공급사·고객사 간 충돌은 비일비재하나 이번 경우엔 양사간 신뢰 문제까지 거론됐다. 

    서버용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시기이다 보니 관련 내용은 뜬소문 형태로 새 나왔다. 현 시점에서 엔비디아는 삼성전자가 놓쳐선 안 될 핵심 최대 고객사로 꼽힌다. 그런 엔비디아가 항의 과정에서 미래 고대역폭메모리(HBM) 협력에 회의적 입장까지 내비쳤단 것이다. 삼성전자는 양사 협력 관계엔 변함이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시장에선 이 같은 소문 하나하나를 접할 때마다 우려를 키워가고 있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치부하자니 실제로 삼성전자 반도체 경쟁력을 둘러싼 지표들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사 HBM 협력이 결렬되지 않았다 뿐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복원하고 있다는 근거를 시장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HBM 전략을 포함해 고부가 D램 대응 실기 문제로 지난해 삼성전자 D램 수익성은 SK하이닉스와 두 배 이상까지 격차가 벌어졌다"며 "연말까지만 해도 금방 격차가 좁혀질 거란 일부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향 공급 경쟁에서 마이크론에도 밀리고 있는 구도로 시장이 파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엔비디아가 AI 서버 시장을 제패했지만, 공급사마다 골고루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테슬라에 이어 최근 오픈AI까지 엔비디아를 겨냥한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자사 칩을 조 단위로 사가던 고객사들이 하나 둘 독립을 선언하거나, 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공급사의 HBM에 발목을 잡히기 곤란한 엔비디아의 사정이 삼성전자에 대한 항의로 드러난 것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엔비디아 칩이 장당 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데, HBM이 불량이면 칩 전체를 못 쓰게 된다"라며 "그러니 검증을 마친 TSMC·SK하이닉스와 연간 단위로 설비·단가·물량까지 사전 협의해 칩을 공급하는 건데, 최종 구매자인 빅테크들이 물량이 모자라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이라 공급사 관리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 상실에 대한 우려가 이 같은 균열음의 발원지로 지목된다. 

    엔비디아와의 HBM 협력 성패는 단순히 평판만 걸린 문제가 아니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 시각이다. 이미 D램 시장은 HBM 경쟁력으로 지위가 뒤바뀌고 있다. D램 1등 지위는 삼성전자가 지난 수십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보여준 압도적 경쟁 우위와 자본력의 근간으로 꼽힌다. HBM 실기로 삼성전자가 D램 왕좌를 내주면 향후 파운드리나 AI 등 전사 차원의 투자 계획이 줄지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더 깊게 들어가면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한 안팎의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다. 시장에선 현재 삼성전자가 놓인 상황에 대해 사실상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 AI 반도체 시장이 급변했는데 이에 대한 경영진 오판과 HBM 대응 실기가 수십년 누적된 삼성전자의 1등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 같은 진단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외국계 기관투자가는 "경영진 오판으로 HBM 준비가 늦어졌고 D램 1등마저 위태로워졌다는 얘기는 이제 구문으로 통한다"라며 "삼성전자 현직 임원이 경영진에 대한 문제를 대신 지적해달라는 푸념까지 전하고 있다. 내부 임직원들이 지난해 이재용 회장의 '(투자)자신 없어요?' 발언을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권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은 "엔비디아와의 HBM 협력 중단설은 사실무근이며 여전히 협력은 문제 없이 진행 중"이라며 "엔비디아 측의 항의 여부는 회사 측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고객사와의 계약 내용이라 회사 측의 공식적인 답변이 불가한 사안"이라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