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 20년…저무는 어피너티 화양연화(花樣年華)
입력 24.02.20 07:00
취재노트
  • 한 때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ffinity equity partners, 이하 어피너티)의 수식어는 ‘아시아 사모펀드의 선구자’(Pioneer in Asian Private Equity)였다. 창립이래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의 투자 실패가 없는 전설적인 운용사, 그 곳이 바로 어피너티이다.

    2조원에 인수해 배당금 7000억원을 받고 최종적으로 6조원에 매각한 오비맥주, 원금의 6배를 남긴 하이마트, 배당금을 포함해 원금의 4배의 이익을 본 더페이스샵 등. 만도·만도공조, 해태제과, 스카이라이프 등 1998년 회사 설립 이래 차례로 결성한 1~3호 펀드의 수익률은 최소 20%, 최대 40%에 달했다.

    사실 어피너티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거기까지였다. 물론 2016년 투자원금의 5배를 회수한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성공도 빼놓을 순 없지만, 과거 손대는 투자마다 소위 ‘대박’을 쳤던 명성은 우려와 걱정으로 바뀐지 오래다.

    사모펀드(PEF) 업계의 걱정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표면적인 이유는 포트폴리오의 부진 때문이다. 수년째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버거킹과 락앤락은 상시 잠재매물이자 어피너티의 가장 아픈손가락이 된지 오래다. 

    2016년 VIG파트너스로부터 인수한 버거킹은 인수 직후부터 실적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22년 버거킹(비케이알)의 매출액은 7574억원을 기록했는데, 영업이익은 78억원에 불과했다. 직전년도와 비교해 68% 이상 감소한 수치다. 2021년부터 시작한 매각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 현재로선 과거 F&B 업종에 적용됐던 거래배수(EBITDA 10~12배)는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매자 찾기는 사실상 어려운 시장에서, 현재는 과거 인수금융자금을 차환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2017년 인수한 락앤락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인수 이후 매출액은 4200~5200억원 수준에서 등락했는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급감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지난해엔 결국 적자전환했고, 주가는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다. 어피너티는 실적과 별개로 배당과 유상감자로 회수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며 눈길을 끌었다.

    여느 운용사나 골머리 썪는 포트폴리오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업계의 사정을 십분 고려해도 시장에서 회자되는 어피너티의 모습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으로 귀결한다.

    어피너티가 잘 나가던 시절엔 소위 ‘이름값’ 있는 인사들이 즐비했다. 상징과도 같던 박영택 회장과 원년 멤버인 이철주 회장, 교보생명과 현대카드·로엔엔터의 투자를 이끌며 사실상 어피너티의 살림을 책임졌던 이상훈(Sam Lee), 이규철 대표(Chris Rhee) 등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중심을 잡고 있던 당시만해도 어피너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3월 박영택 회장은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어피너티를 떠났다. 그 자리를 물려 받은 이철주 회장, 차기 리더십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상훈 대표까지 모두 어피너티를 떠났는데, 이미 이규철 대표는 2021년 CVC 대표자리로 옮긴 상황이었다. 명확한 후계구도도,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런 핵심멤버들의 잇따른 퇴사는 여러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토종 PEF 운용사 오너들이 후계구도를 고민하고, 파트너들은 지분 구획 정리 해답을 찾는 시기.

    어피너티는 이런 고민의 여지 없이 핵심 멤버들이 모두 사라졌는데 이 과정에서 가치만 조 단위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지분을 원가에 내려놓고 떠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핵심 인력의 줄퇴사,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 오너였을 가능성이 높다. 돌연 은퇴를 선언한 박영택 회장이 복귀할 수 있단 투자자들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어느덧 잊혀졌던 어피너티의 창립자 K.Y.탕(Tang) 회장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키맨들의 줄퇴사, K.Y.탕(Tang) 회장의 복귀와 함께 한국 어피너티의 전권(?)을 쥐게 된 인사가 바로 현재 민병철 대표(Charles MIn)이다.

    2007년 합류해 2018년 파트너로 승진한 민 대표는 어피너티의 역사를 함께 한 인물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물론 박영택·이철주·이상훈·이규철의 이름값에 비하긴 어렵고, 자본시장 내 인사들과 접점이 그리 많지 않은 인사로 분류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민대표가 이끄는 어피너티의 매끄럽지 못한 의사결정들은 어피너티의 위기설에 더욱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버거킹은 문영주 투썸플레이스 대표를 대상으로 경업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는데, 표면적으론 버거킹과 투썸의 갈등이지만 사실 어피너티와 칼라일의 대결구조라는게 정설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문 대표 측 손을 들어주며 어피너티는 괜한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됐다.

    최근 어피너티는 신한금융지주 지분을 두차례 블록딜로 매각하며 지분율을 크게 낮췄다. 많은 투자자들이 기억하는 2020년 신한지주 증자 당시 ‘저가인수’에 참여한 곳이 바로 어피너티다. 당시 인수한 지분을 이제 시장에서 매각한 건인데, 이 과정에서 신한지주는 물론 주주사 어느곳에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분 매각을 통보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외이사 지명권을 내려놓는 다소 중대한 사안임에도 한마디 없이 떠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란 평가가 있었다.

    투자자로서 끈끈함(?)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수 년간 함께한 파트너사 그리고 ‘저가’ 지분 투자의 최대 수혜자로서의 뒷모습이 썩 아름답진 않았다.

    이런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다보니 기관투자자(LP) 사이에서 어피너티에 과연 출자하는게 맞느냐는 회의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시원치 않은 반응 때문인지, 아니면 펀드레이징에 대한 의지 또는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전후관계를 명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 어피너티와 체급이 비슷한 운용사들이 펀드레이징에 나서는 상황에서도 어피너티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핵심 실무진들마저 대거 떠나면서 투자는 멈췄고, 펀드레이징도 요원하면서 어피너티 자체의 매각 가능성까지 진지하게 거론되는 상황까지 몰려있다. 한국 사모펀드의 태동과 함께한 어피너티의 화려한 시절은 저물고 있다. 물론 지금의 어피너티가 환골탈태를 위한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예전의 명성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