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만한 것도, 팔 의지도 불투명한 롯데그룹…중요한 건 결국 버티기?
입력 24.02.21 07:00
신동빈 회장, 장기 부진 사업 대수술 예고
시장은 주류·알미늄 등 자산 활용 가능성 주목
실제 구조조정 의지나 성과 드러낸 사례 적어
자금 필요하지만…수동적 본업 회복 기다릴까
  • 롯데그룹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연초부터 오래 부진한 사업에 대한 대수술 가능성을 언급했다. 벌써 일부 계열사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시장에서도 변화 의지를 획기적으로 드러낼 대형 거래가 나타날지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이 실제로 과감한 결정을 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이 관심을 가질 자산이 많지 않은데 그나마도 여러 이유로 선뜻 내놓기 쉽지 않다. 결과가 확실치 않은 구조조정을 하느니 현상 유지를 하는 편이 기회비용이 적다. 버티는 사이 기존 사업이 다시 빛을 보면 롯데의 고민은 당분간 사라진다.

    롯데그룹은 지난 수년간 불운을 겪었는데 팬데믹 이후 유동성 기근에 따른 타격이 가장 심했다. 그 전의 악재들도 뼈아팠지만 2022년 말 시작된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위험은 대처가 쉽지 않았다. 메리츠금융그룹과 손잡고 1년여간 시간을 벌었고, 올해 다시 금융권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었다. 롯데그룹의 자체 역량보다는 대기업까지 흔들려선 안된다는 정무적 판단 덕을 봤다는 평가다.

    롯데그룹 재무 불안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 보기는 어렵다. 1년여간 롯데케미칼 등 주력 계열사가 롯데건설 지원 부담을 져야 했고, 이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 한샘과 솔루스첨단소재 투자 등에 따른 재무 부담도 적지 않다.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를 인수하지 않은 것이 천운으로 평가받을 정도다.

    롯데그룹은 올해 들어 채권시장안정펀드의 도움을 받아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금융사를 적극 찾고 있다. 당장의 유동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롯데그룹에 대한 시각을 바꿀 요소는 아니다. 결국 적극적으로 사업부 매각 등 구조조정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도 롯데그룹 자산을 두고 옥석가리기를 하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의 핵심 영역과 연관성이 크지 않거나 현금창출력이 좋은 사업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 부문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룹의 전략담당 임원이 바뀔 때마다 잠재 매물로 꼽히는 분위기다. 신동빈 회장의 애착이 큰 와인사업(Gallo, yellow tail 등)보다는 소주(처음처럼)와 맥주(클라우드)에 시선이 모인다. 과거 오비맥주 성공 사례로 해외 사모펀드(PEF)들의 주류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PEF가 인수하면 비용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롯데알미늄 활용 가능성도 거론된다. 회사는 롯데지주의 주요주주(작년 3분기 지분율 5.1%)이자 L제2투자회사(2022년말 34.9%)와 광윤사(22.8%) 등을 주주로 둔 지배구조의 중요 축이다. 다만 유통, 화학 등 그룹의 핵심과는 큰 연관이 없어 사업적으로 유지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롯데알미늄은 작년말 롯데알미늄비엠(양극박·일반박)과 롯데알미늄피엠(캔·PEF병 등) 물적분할을 결정했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반대 의사를 표하며 주주총회 표대결을 예고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주류 사업은 대기업이 하기 적합하지 않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판다면 와인을 제외하고 소주·맥주가 대상이 될 것”이라며 “화학·유통·호텔 등 그룹 주력과 거리가 있는 롯데알미늄의 사업도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기업을 인수하는 데 적극적이지만 회사를 파는 데는 극히 보수적인 사풍이다. 다른 대기업 대비 보수가 낮아도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롯데홈쇼핑(법인명 우리홈쇼핑)은 2대주주 태광산업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사업성까지 악화하며 팔기 어려워졌다. 카드·손해보험 등 금융사를 팔았지만 이는 외부 요인에 따른 결단이었다. 전처럼 그룹 안에 총대를 메고 의사 결정할 인사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도 일부 매각 사례가 있었지만 적극적인 의사 결정을 했거나 괄목한 성과를 냈다고 보긴 어렵다. 중국의 유통 사업 철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는 롯데케미칼타이탄 매각도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작년에 추진된 롯데케미칼파키스탄 매각은 올해 현지 사정으로 무산됐다.

    최근 코리아세븐이 ATM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글로벌 PEF와의 협조 가능성도 거론된다. 2022년 한국미니스톱 인수 후 재무상황이 악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인수전 당시 경쟁자를 뿌리친 금액을 써낸 만큼 이제 와서 사업 전반을 정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롯데그룹은 십 수년전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후 절치부심한 경험이 있어 주류 사업에 대한 애착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그룹이 주력 사업을 손대기는 더 어렵다.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크게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진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지주의 대주주(13%) 중 하나지만 그보다는 롯데홀딩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그룹을 이끌 수 있는 구조다. 핵심 사업을 수술하면 시장에 확고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으나, 그룹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일본 주주들의 비판이 불거질 수도 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신격호 전 회장 때부터 기업을 인수하기만 했지 파는 것은 금기시했다”며 “그룹의 정체성인 화학이나 유통 분야는 구조조정을 시도했다가 결과가 나쁘면 그룹 수뇌부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보수적인 사풍, 공들여 키운 사업에 대한 애착, 신동빈 회장의 그룹 내 지위 등을 고려하면 롯데그룹에서 시장의 이목을 모을 대형 구조조정 거래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성과를 확신하기 어렵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면 힘을 빼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 중에 기존 사업이 회복된다면 위기 탈출의 시간도 앞당길 수 있다. 롯데쇼핑은 작년 7년 만에 당기순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롯데케미칼은 2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지만 화학사업은 글로벌 경기에 따른 실적 변동 폭이 크다. 여기에 롯데그룹은 부동산 등 아직 활용하지 않은 자산도 적지 않다. 이번의 재무 부담까지는 풀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는 주력 사업 경쟁력 약화, 각종 사업에 대한 중복 투자 등 부담이 두고두고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룹이 결정의 적기를 놓쳐 지금 고전하는 면도 있다. 주력 사업이 별 문제 없이 과거의 영광을 찾는다면 그룹의 역동성을 보여줄 기회는 오히려 늦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등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많기 때문에 이번 고비까지는 어찌어찌 넘길 수 있겠지만 본업 부진이 계속된다면 다음 위기 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