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못내는 티빙-웨이브 합병…올해 안에는 가능할까
입력 24.02.21 07:00
당초 연초에 실사 거쳐 본계약 전망 있었지만
여전히 주주 이해관계 조율 쉽지 않은 분위기
시간은 CJ편?…웨이브 하반기 CB 상환 만기
출혈경쟁·정부 눈초리 기조에 속도날까 관심
  •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TVING)과 웨이브(WAVVE)의 합병 절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CJ그룹과 SK그룹이 합병 논의를 위한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모든 주주들이 만족할 방안을 도출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의 모회사인 CJ ENM과 SK스퀘어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양사는 지난해 12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르면 연초에 본계약을 맺지 않겠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당장 실사 작업만도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이후 본계약 일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등의 절차까지 고려하면 연내 합병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의미있는 진전이 상반기 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합병안 자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합병 논의가 물꼬를 튼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평이다. 합병 건은 주요 주주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웨이브는 SK스퀘어(40.5%), KBS(20.24%), MBC(20.24%), SBS(20.24%) 등이 주주다. 2019년 2000억원 규모 사모CB를 발행하며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 프리이빗에쿼티(PE)를 재무적투자자(FI)로 두고 있다. 티빙은 CJ ENM(48.9%), KT스튜디오지니(13.54%), SLL중앙(12.75%), 네이버(10.66%) 등이 주주다. 2022년 2500억원 규모 투자에 나선 FI 젠파트너스(구 JCGI)도 13.54% 지분을 보유 중이다.

    통합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국 주주들이 제외될 것인지 여부도 문제다. 웨이브가 8월 지상파와의 콘텐츠 제공 계약이 끝나는 만큼, 지상파 주주들의 거취에 따른 웨이브와 티빙의 실익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 웨이브 입장에서는 지상파 콘텐츠가 핵심 경쟁력이지만, 지상파 주주들의 ‘입김’이 부담스러웠던 면도 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합병을 위한 논의에 들어가긴 했지만, CJ 임원들 사이에서도 합병안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반반인 분위기”라며 “CJ 입장에서는 웨이브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지상파 방송들 작품을 독점으로 낮은 가격에 계약할 수 있는 정도의 이득을 원해도 현실화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러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OTT 사업 특성상 가치 산정도 복잡해 합병비율 산정부터 쉽지 않다. 티빙이 최근 3년간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권 확보를 위해 1200억원을 투입하는 것도 기업가치를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SK가 현재 웨이브에 대규모로 투자금을 넣을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CJ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연될수록 합병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SK스퀘어는 투자금 상환 부담도 다가온다. 2000억원 투자금 유치 과정에서 5년 내 웨이브의 기업공개(IPO) 조건을 걸었지만 상장이 불투명해지며 올해 11월 이후 내부수익률(IRR) 9%를 더한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CJ측에서 합병 후 웨이브의 부채 부담까지 나누려고 할지는 미지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11번가 이후 SK가 후속 딜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관심이 큰데, 웨이브는 사업 연관성이 적다 보니 SK의 사업 의지에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SK그룹이 나서 투자금을 상환하는 조치가 있어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가 막대한 콘텐츠 투자 출혈 경쟁을 멈추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티빙과 웨이브 모두 지속적인 적자에 모회사에 손실 부담을 안기고 있다. 여기에 최근 쿠팡플레이가 치고 올라오고 있어 합병의 유효기간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글로벌 OTT 업계도 사실상 결국 ‘1등’이 장악하는 시장으로 정의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작년 4분기 긍정적인 실적을 기록했다는 발표 이후 주가가 급등했다. 넷플릭스의 지난 분기 신규 구독자는 1310만명으로, 코로나19 초기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총 가입자 수는 2억6080만명이 됐는데 이는 넷플릭스 설립 이래 최고 기록이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구독료 인상, 비밀번호 공유 단속, 광고 확대 등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분석했고, 파이낸셜타임즈(FT)는 “스트리밍 전쟁은 끝났고 넷플릭스가 이겼다(Streaming wars are over and Nexflix won)”고 짚었다. 

    최근 대통령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에 OTT 요금 인하 방안을 주문한 점도 고려된다. 최근 OTT 업체들이 가파르게 구독료를 올리면서 ‘디지털 물가’를 잡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의 구독료 인하 압박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 가능성도 떠오르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업체는 정부가 압력을 넣기 어렵다 보니 토종 OTT가 집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사안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정부 고위 단에서의 ‘정리’가 아니면 성사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있었다. 정부가 직접 OTT 구독료에 관심을 가지면서 양사의 합병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