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등 관료 모시기 바쁜 삼성..."전문 경영인 한 명이 절실한데"
입력 24.02.27 07:00
취재노트
  • 결국 이재용 회장은 어떤 계열사의 등기이사로도 복귀하지 않았다. 검찰의 항소로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최소 수년 더 잔존하게 됐는데 이젠 회장과 삼성그룹의 가장 무서운(?) 견제자여야할 준법감시위원장이 나서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종용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삼성그룹이 주장하는 이사회 중심의 경영은 보기좋게 실패했다. 등기임원 타이틀이 전무한 이재용 회장에 대한 주목도는 최근 들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의 전략적 판단들은 사업보단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해소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오너의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너와 경영진의 유일한 견제장치는 역시 사외이사이다.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추고 경영진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사결정엔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다. 이를 위해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모시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사외이사 선임을 확정한다.

    회사는 "신 후보는 금융·재정 전문가로서 회사의 자금 운용 및 글로벌 전략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양한 국제무대 활동 경험과 인적 네트워킹은 향후 회사의 주주 및 대내외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금융당국의 수장으로서 갖춘 지식과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임은 분명하다. 다만 삼성전자가 몇 안되는 사외이사 자리에 이미 수년 전 최고직 자리에서 물러난 인사를 영입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투자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사업과 밀접한 연관도 없고, 회사와 관련한 이력도 사실상 전무한 금융관료 출신 인사가 과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사실 삼성전자의 현직 사외이사진도 회사의 위기를 타개할 전문가들로 보긴 어렵다. 

    ▲김한조(하나금융나눔재단 이사장) ▲김선욱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 ▲김종훈(키스위모바일 회장) ▲김준성(전 싱가포르투자청 국장) ▲허은녕(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 ▲유명희(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등 100% 로컬 이사회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기 시작한 삼성전자에 과연 걸맞는 구성인지는 생각해 봐야한다.

    관료 출신 인사로 정풍(正風)을 막겠다는 게 비단 삼성전자만의 일은 아니다.

  •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의 핵심 계열사이자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인 삼성물산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을 거쳐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김경수 전 검사장 영입을 추진중이다. 또 다른 그룹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서승환 전 국토부장관(전 연세대학교 총장)을, 삼성중공업은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원재 전 국토교통부 제1차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삼성SDS는 이인실 전 통계청 청장의 사외선임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이사진에 포함한 바 있다.

    삼성그룹은 2019년 삼성전자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장관의 삼성전자 사외이사의 선임 과정에서 상당히 곤욕을 치른 바 있지만 전자와 물산 및 금융계열사까지 관료 출신 이사진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명망있는 관료출신 인사들에게 기업과 정부 사이의 윤활류 역할을 기대할 순 있다. 그러나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사외이사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진짜 실력 있는 '전문가'보다 대관(代官)을 위한 바람막이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단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삼성그룹이 처한 위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타개해 나가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