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세대' 82학번 CEO 사라진 증권가
입력 24.03.08 07:00
취재노트
코로나 사태 덕 장수 CEO 역임했던 82학번 군단 퇴진
오랜 기간 2인자였던 60년대 중후반 인사들 전면 등장
김성환 한국證 대표 등 무사히 승계 마무리…NH證도 관심
빅베스 통해 높은 성장세 구현하며 장기 치세 이어갈까
다만,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나이…내부 갈등 심화할듯
  • 오는 12일 NH투자증권을 끝으로 증권가 최고경영자(CEO) 인사 시즌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용퇴를 선언하며 대형 증권사 CEO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82학번 세대' 대부분이 퇴진하게 됐다. 

    이들의 빈자리는 오랜 기간 2인자로 있던 1960년대 중후반 인사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수 년 간의 이인자 위치에서 벗어나 드디어 경영 전면에 등장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앞선 CEO들의 오랜 군림으로 이들이 리더십을 보일 기회가 길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선 차주 결정될 NH투자증권의 차기 대표 자리를 두고 관심이 뜨겁다. 정영채 사장과 오래 호흡을 맞춘 윤병운 부사장에게 승계가 무사히 이뤄질지, 이로써 IB출신 대표들의 강세가 이어질지가 주요 관심사다. 

    전임 대형 증권사 CEO들은 82학번이 다수 포진한 IB맨 출신의 '장수' CEO들이었다. IB부문 경험이 20~30년에 이르며 증권가 IB부문 성장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유행의 혜택을 받아 무리없이 연임에 성공했다는 업계 중론이다. 이에 뒤늦은 세대교체의 원인이 된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82학번 CEO들이 물러나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글로벌 양적완화는 끝나고 긴축이 시작되며 증권업에도 어려운 시절이 도래한 까닭이다.  부동산 금융 잠재부실 등 영업은 어려워지고 리스크는 커지며 세대교체 필요성이 커졌다. 

  • 지난해부터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등 증권가를 주름잡던 CEO들은 차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5일 정영채 사장마저 용퇴를 선언하면서 1960년대 중후반 인사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분위기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1969년생, 이홍구 KB증권 사장은 1965년생, 박종문 삼성증권 사장은 1965년생, 장원재 메리츠증권 사장은 1967년생이다. 

    속속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가운데 업계 이목은 전임 CEO의 색채가 이어지느냐에 쏠렸다. 예컨대 한국투자증권은 정일문 전 사장의 후계인 김성환 사장에게 무난히 승계가 이뤄진 곳으로 평가받는다. 김성환 사장은 2016년말부터 약 7년간 부사장직을 지냈다. 

    다만, 성공적인 승계가 이뤄졌다고 볼 만한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IB부문의 침체와 증권사 내부통제 부실 이슈가 부상하면서다. 메리츠증권은 메리츠금융지주·화재에서 리스크 관리를 맡아온 인물을 선임해 다분히 내부통제를 의식한 인사를 단행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2학번 CEO들의 재임기간이 대체로 5년 이상으로 길었기 때문에, 세대교체된 인사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해 말 적자로 전환한 증권사들이 적지 않아 실적 회복이란 과제에 직면했단 평가다. 

    이에 대해 증권가에선 오히려 빅베스(부실채권 처리)를 통해서 높은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당장은 부진한 실적을 기록할지라도 이후 회복세가 더욱 드라마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을 권고하는 금융당국의 기조도 오히려 이들의 연임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뒤늦은 세대교체로 이번에 부임한 신임 CEO들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50대 후반에서 60까지를 정년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인데, 이미 일부 신임 CEO들은 1~2년새 정년을 바라봐야 하는 나이다. 개인 역량과 별개로 현실적인 사정상, 연임이 가능하겠냐는 이야기다. 

    증권사 내부에선 낀세대들의 고충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인사 적체는 심화되는데, 밑에선 세대교체 명목으로 70-80의 인사 약진이 거세다. 뒤늦은 세대교체의 후폭풍이 두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증권업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 많지만 빅베스를 통해 실적 성과를 보이기엔 오히려 좋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CEO가 될 기회를 너무 오래 엿본 탓에 이들의 나잇대가 높아졌다는 게 변수다. 82학번처럼 장수하는 CEO들이 다시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