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위기 진원지 지목된 SK스퀘어…시장 불신 키운 건 박정호 부회장?
입력 24.03.14 07:00
서든데스 후 대수술…수펙스 중심 교통정리 한창이지만
시장 불신·냉소는 진행형…SK스퀘어 투자 결과물이 상징
회수 기대감은 바닥…결국 모회사 부채거나 잠재 분쟁行
  • 지난해 시장의 싸늘한 눈길을 마주한 SK그룹은 올 들어 전사 차원 대수술에 들어갔다. 자본시장에서 가장 모시고 싶던 큰손이 불신의 아이콘이 됐다는 내부 위기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SK스퀘어는 이 같은 위상 추락과 시장 실망감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회사로 지목되고 있다. 향후 그룹이 마주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걸림돌이 될 거란 안팎의 지적이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SK스퀘어의 밑그림을 그린 박정호 부회장에 대해 냉정한 평가로 이어진다.

    SK그룹의 지난 연말 정기 인사는 서든데스(돌연사)로 표현됐다. 시장에선 그간 그룹이 전면에 내건 파이낸셜 스토리의 실패를 자인하고 기조를 180도 뒤집은 것으로 해석했다. 각 계열사를 맡은 부회장단에 자본시장을 활용한 체질 개선을 주문했으나 마땅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재무 부담에 그룹이 휘청이게 된 데 따른 조치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룹 2인자 위치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최태원 회장 인척인 최창원 부회장에 맡긴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그룹 인수합병(M&A)을 총괄하던 수펙스를 계열 인사권 중심으로 재편한 뒤 순차로 신상필벌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실제로 연초 이후 전사 차원에서 전략 라인을 축소하고 재무 라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늦은 감이 있지만 수펙스가 각 계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교차 발탁하고 신사업 팀을 축소, 통폐합시키는 방식으로 종전 경영진 색채를 빼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부회장들의 시대가 각 계열, 중간지주 단위 경쟁 체제였다면 수펙스 인사권 중심 중앙집권 체재로 재편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시장 신뢰 추락에 불 지핀 SK스퀘어 11번가 사태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SK스퀘어에 대한 분노가 대단하다는 말을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라며 "당시 최 회장이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채 11번가 콜옵션 행사 포기가 결정됐는데, 지주에서 진행 중인 거래까지 영향을 미쳤고 결국 뒤늦게 그룹 차원에서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도 연기금·공제회 등 대형 출자자(LP) 사이에서 SK그룹 거래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해마다 누적되고 있었다. 자본시장과 접점이 많은 SK그룹으로선 그런 인식 자체가 평판 위협이다. 11번가의 경우 핵심 투자자가 국민연금이었다. 의결권 행사 외 출자 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콜옵션 포기는 SK가 그런 국민연금에 약속한 보장 수익률마저 외면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 때문에 11번가 사태는그룹을 둘러싼 마른장작에 SK스퀘어 스스로 불을 댕긴 결정으로 시장에 회자하게 됐다. 

    올 들어 자본시장이 SK그룹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냉소가 묻어 나온다. M&A 시장은 SK그룹에서 나올 매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년 SK그룹 거래를 자문하기 위해 분주했던 모습과 대비된다. 영업에 나선 실무진 사이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시장에서 관심이 있을 만한 매물은 SK그룹에도 꼭 필요한 사업들인데, 반대로 SK그룹에 골치인 사업은 시장에 내놔도 팔리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경영진들이 통신·에너지 같은 내수 기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라는 그룹 주문에 따라 손을 댄 신사업들이 역으로 기존 사업 현금흐름에 기생하는 구조"라며 "7년이란 시간을 줬는데 남은 건 통신·에너지 등 종전 사업들이고, 이마저도 지분 일부를 유동화하거나 팔아버린 상황이라 매각할 자산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라고 전했다. 

  • 그룹 향한 불신·우려 상징처럼 자리 잡은 SK스퀘어

    SK스퀘어는 위기를 깨닫게 된 계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그룹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회사로 꼽힌다. SK그룹이 표방한 투자형 지주회사의 상징이었으나 실제 투자 전적에 대한 시장 평가는 한숨 또는 냉소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 인적분할로 SK스퀘어가 출범하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보면 시장이 실망하는 이유가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 2017년 박정호 부회장은 그룹 M&A 전문가 타이틀을 내걸고 SK텔레콤을 맡은 뒤 "규제산업인 통신사는 미래 신사업 성과가 드러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중간지주사 신설 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SKT 산하 미래 신사업을 뚝 떼어내고 ▲통신산업 규제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수혈한 M&A 인력 중심으로 출범한 게 SK스퀘어다.  

    그러나 작년 SK쉴더스 매각 외 떠올릴 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마저도 시장에선 마침 인프라 사업 기반을 갖춘 새 주인이 등장한 덕에 SK스퀘어가 면을 세운 거래로 통하고 있다. 반면 그간 그룹 내에서 승승장구한 M&A 전문 전략 라인들의 사업 이해도 부족을 지적하는 시각은 늘어난다. 이미 내부에서도 SK스퀘어의 각 포트폴리오 기업 경영진에 대한 회의감이 적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증권사 IPO 담당 한 임원은 "2년 전 SK스퀘어의 무더기 상장 추진 당시 주관 경쟁에 뛰어들긴 했지만 내부적으로 상장이 어렵겠다는 판단은 내려져 있었다"라며 "미팅 과정에서 스퀘어 산하 기업의 경영진과 접촉하며 이들의 이력, 선임 배경, 역량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회사에 투자한 FI나 공모 시장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감 없이 하달 받은 목표 밸류를 맞춰야 한다는 태도만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정상화 과정 걸림돌 될 우려도

    SK그룹은 올해 내도록 허리띠를 졸라매는 작업을 이어갈 전망이다. SK스퀘어로선 계획대로 회수 성과를 내줘야 한다. 그러나 SK스퀘어 아래 포트폴리오의 상장 작업이 쉽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대부분이고, 매각으로 선회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을 추진하다가 매각으로 튼 기업에 대해선 종전 실사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라며 "목표 밸류를 끌어내기 위해 특정 시점 실적이 극대화하도록 소위 마사지를 거친 경우가 많은 데다, 이를 위해 사업 지속성을 희생시킨 사례도 쌓여 있다. SK스퀘어 손을 탔다는 것만으로도 인식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11번가 사례처럼 FI와의 계약 문제가 잇따를 거란 우려로 이어진다. 달리 보자면 어떤 형태로든 SK스퀘어가 FI의 회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시장에선 SK스퀘어의 그간 투자 유치를 잠재 부채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SK스퀘어가 이를 부담할 만한 재무 체력이 없다면 모회사인 SK㈜의 수혈,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배당에 손을 벌리거나 분쟁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SK그룹의 정상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이 많다.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11번가도 SK텔레콤 아래 있었다면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는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SK스퀘어 식의 투자 활동은 결국 비싼 가격에 공모시장에 떠넘기거나 모회사가 빚을 갚아주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 쉽다. 중복상장으로 지주사 가치에 기여한다는 모델도 깨졌고, 지금으로선 시한폭탄 비슷해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