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두고 금융당국ㆍ국민연금 미묘한 시각차...'원칙은 동의, 내용은 부담'
입력 24.03.18 07:00
7년 만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기관 손 내민 당국
수익성 중요 국민연금…협조 하면서도 내심 '부담'
가치형 운용사 선정에…"또 회수하려고?" 냉소도
2040년 감소기…국내 주식 비중 늘리기도 어려워
  •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두고 금융당국과 국민연금 사이의 미묘한 시각차가 감지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밸류업 정책의 실행력 강화를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정책을 들고 나오며,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기관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 참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급적 부분에 의존한 밸류업 정책은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그칠 뿐이란 평가다. 국민연금이 일본 등 해외 연기금에 비해 국내주식 투자 비중이 낮고, 장기적으로 비중을 늘릴 여력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 개정을 예고했다. 2017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지 7년 만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할 7가지 원칙이다.

    당국이 발표한 개정안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 3번 원칙에 '투자대상회사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시행·소통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기관투자자가 투자대상 회사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감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4대 연기금과 공제회, 125개 운용사 등 22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당국이 밸류업 기자간담회를 열었던 같은 날, 국민연금은 서울지역본부에서 기금운용성과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석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략부문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전체 기금 수익률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방향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자금 투입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부문장은 "향후 정책이 구체화된다면 검토해보고 기금운용 방향성과 일치한다면 자금 투여가 가능할 것"이라는 당위적인 언급만 했다. 이후 수익성 제고를 위한 대체투자 분야 '기준 포트폴리오' 도입을 예고하며 대체투자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를 두고 금융위와 국민연금이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동상이몽'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설명회에서 강조한 것은 결국 '수익성'이고, 밸류업보단 대체투자 등 장기적으로 운용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집중했다"며 "당국이 국민연금에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를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최근 국내 주식 가치형 위탁운용사 선정에 나섰다. 3개사를 선정하는데, 현재 제안서 접수를 완료하고 이달 중 최종 선정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이번 운용사 선정이 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가치형 국내주식 발굴을 위한 위탁운용사 선정에 나선 것은 지난 2016년 10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이유로 가치형 운용사 선정을 진행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수익성 저조를 이유로 국내 대표 가치투자 하우스로 알려진 신영자산운용의 위탁 자금을 전액 회수하기도 했다. 이차전지 열풍에 탑승하지 못하고 가치투자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자산운용업계 사이에서는 "수익성이 저조하면 국민연금이 또 자금을 회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금융위와 금감원, 한국거래소까지 나서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는 터라 당국의 요청에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추가적인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입할 여력도 부족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3.59%로 사상 최고의 수익률을 달성했는데, 해외주식 비중이 30.9%로 14.3%에 불과한 국내주식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일본 공적연금 GPIF의 자국 주식 비중이 최근 10년새 10%에서 25%로 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앞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2040년을 기점으로 기금 규모가 줄어드는 감소기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향후 기금 감소에 따라 자산 매각이 필요할 때 국내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국내보다 해외투자 규모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손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은"국내주식 비중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연간 수십조원 수준의 매도가 발생한다"며 "현재도 국내 주식시장의 위탁시장 내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액티브 전략이 초과 성과를 내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에만 기대고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이 불투명한만큼, 시장의 관심은 오는 5월 예정된 당국의 2차 세미나에 몰린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당국은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부터 국민연금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번 운용사 선정도 그 일환"이라며 "기관에만 의존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곧 있을 2차 세미나에서 당국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시장에 제시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