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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인선을 둔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다. 현임 대표가 단독 추천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IB) 출신 전문가로 대상자가 바뀌었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결정을 그룹에서 뒤집은 모습이라 민감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현대캐피탈이 서둘러 소식을 알렸다. 차기 행선지를 두고 일정 기간 시간을 가지며 의견을 조율하는 자본시장의 관행과도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캐피탈은 정형진 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정 신임 대표는 1999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에 합류했고, 지난 10년간 한국 사업을 이끌어 왔다. 현대차그룹은 어느 때보다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파이를 더 키우려면 할부금융사의 지원이 중요하다. 글로벌 IB 출신 전문가가 합류하면 해외 사업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형진 대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보스톤다이내믹스 인수 등을 자문하며 현대차그룹과 신뢰관계를 쌓았다. 지난 수년간 활약이 뜸하며 골드만삭스 내 입지가 줄었다지만 현대차그룹이 탐을 낼 만한 인사다. 정 대표 입장에서도 쟁쟁한 임원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대차나 기아보다 금융사가 더 맞는 자리일 수 있다.
현대캐피탈의 정형진 대표 영입은 합리적이지만 과정은 이례적이었다. 지난 8일 임원추천위원회는 현임 목진원 대표이사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단독추천했는데, 며칠 사이 결정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2021년 정태영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 현대차그룹(지분율 현대차 59.7%, 기아 40.1%)의 경영 체제로 들어왔다. 그룹 차원에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미 회사가 자율적으로 인사를 추진한 상황이었다 보니 모양새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현대캐피탈이 시간차를 두지 않고 새 인사 내용을 발표한 터라 회사 밖의 뜻, 즉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이 결정적이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 됐다. 계열사 수장 인사에 총수의 뜻이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게 당연하지만, 표면적으로나마 이사회 중심 경영이 중시되는 최근 경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본시장의 관행에 비췄을 때도 다소 이른 인사 발표란 평가가 따른다.
글로벌 IB나 사모펀드(PEF)의 경우 다른 곳으로 직을 옮길 때 기존 직장과 긴밀하게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 후 수개월간은 경쟁사로의 이직을 추진하지 않거나, 추진하더라도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 알려질 경우 기존 직장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해야 한다. 작년 한 IB 인사는 지역 헤드쿼터와 이야기가 마무리된 직후 이적설이 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정형진 대표는 퇴임 확정 후 3개월 뒤인 6월부터 현대캐피탈로 출근하기로 했다. 자본시장의 표준에 맞게 일종의 완충기간을 둔 것으로 풀이되는데 인사 발표로 일찍 알려지게 됐다. 글로벌 IB에서 국내 여전사로의 이직이니 대단한 이해상충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보내는 쪽이나 모시는 쪽 모두 불편할 상황일 수 있다. 자본시장 화법에 대한 현대차그룹 전반의 이해도가 아직 부족한 것이란 인식을 줄 여지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법인 상장으로 수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그룹은 아직 이를 적극 부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글로벌 IB 출신 인력 영입을 적극 알린 것과는 대조되는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취재노트
현 대표 단독 추천 며칠 뒤 정형진 대표 영입 알려
시간차 없는 발표에 그룹이 적극 개입한 면 부각돼
이직 시 완충기간 갖는 자본시장 관행과도 거리감
현 대표 단독 추천 며칠 뒤 정형진 대표 영입 알려
시간차 없는 발표에 그룹이 적극 개입한 면 부각돼
이직 시 완충기간 갖는 자본시장 관행과도 거리감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3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