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왜 이러나" 주주 성토장 된 올해 대기업 주주총회
입력 24.04.02 07:00
경영진에 부진한 실적과 주가 질책한 주주들
HBM 투자 시기 오판 지적 받은 삼성전자
LG엔솔은 "권영수 전 부회장 왜 안 나왔나" 성토
CEO·CFO 등 주요 경영진 주가 거듭 사과해
  • 지난주 마무리된 올해 정기 주주총회(주총)의 키워드는 '주주 달래기'로 요약된다. 연초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기업가치 제고 및 주주환원이 화두가 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주총에선 악화한 실적과 주가 약세를 향한 주주들의 불만에 주요 경영진이 "죄송하다", "분발하겠다"를 반복하며 주주들을 달래는 풍경이 다수 연출됐다.

    '국민주'인 삼성전자 주총에서도 주주들의 성토가 잇따랐다. 지난달 20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한 주주는 "SK하이닉스 주가는 계속 상승하는데, 삼성전자는 주가 흐름이 부진하다"며 경쟁사와 비교해 삼성전자의 주가가 부진한 점을 지적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 부문장 부회장에게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까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주총 의장인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은 "주주님들 기대에 주가가 미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주주 여러분께 사과를 드린다"고 사죄했다.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시기 오판 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AI가속기 '마하-원' 개발 등 사업 현황과 전략을 공개하며 주주들을 달랬다. 경 사장은 "반도체 업황의 다운턴도 있었지만 저희가 준비를 잘 못한 것도 있었다"며 "근원적인 경쟁력이 있었다면 시장과 무관하게 사업을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로 지난해 실적이 부진했던 배터리 업계에서도 주주들의 불만 표출이 이어졌다.

    3월28일 열린 SK이노베이션(SK온의 모기업) 주총에서 한 주주는 "SK이노베이션 주력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이 SK온으로 흘러 들어가며 임직원과 주주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이익들을 감내하고 있다"며 "주주환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꼭 좀 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새 사내이사로 선임된 강동수 전략재무부문장은 "주주환원 방안에 대해서 이사회 상의도 필요해 바로 답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죄했고,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또한 "주가가 주주 여러분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인 부분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같은달 25일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주주총회에선 "60만원 가던 주식이 40만원대로 고꾸라졌고 배당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질책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자리에서 물러난 권영수 전 부회장을 찾는 주주도 있었다. 1년 새 하락한 주가에 대한 설명과 배당을 하지 않는 까닭을 따지기 위함이었다. 이날 주총 의장을 맡은 이창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배당을 하려면 상법상 배당 가능 재원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결손 상태"라며 "향후 적정 수준의 배당가능이익이 나오는 시점에 경영실적과 투자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 준비를 체계적으로 해서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액을 기록해 배터리3사 중 가장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SDI도 주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주가가 4년 전과 똑같다"거나 "3년 전 대비 매출은 2배 증가했는데 주가는 제자리니 자사주 소각이라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연이어 나왔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는 "주주의 마음을 100% 공감하고 이해한다"며 "생산능력이나 사업 규모 등 다각도로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받고 있는데, 투자자들에게 아직 확신을 주지 못한 점은 반성한다"며 사죄했다.

    국민 대표 IT기업인 네이버 주총에서도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부진한 주가에 대한 성토하는 주주들을 달래는 장면이 연출됐다. "네이버 주가 때문에 고통스럽다. 네이버는 혁신이 필요한데, 자화자찬만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 주주에 최수연 대표는 "주주들이 주가 지표에 대한 우려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고개 숙였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내고 희망퇴직을 단행한 이마트 주총에선 정용진 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의 보수 책정이 과도하다며 "보수 한도를 낮추라"는 주문을 요구한 주주도 있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이마트에서 급여 19억8200만원과 상여 17억1700만원 등 모두 36억9900만원을 받았다. 강승협 주주총회 의장 겸 신세계프라퍼티 지원본부장은 "지난해 실적에 대해선 경영진의 전면적인 교체 등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지난해 이사의 급여 및 성과급은 계량지표와 중점 추진 사항, 핵심 과제 평가 등에 따라 이뤄졌고, 이에 따라 전년 대비 낮게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주총을 '밸류업'의 시작으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올해 상장사 21곳이 지난해보다 8배 넘는 규모인 3조원 이상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고, 경영진들이 전면에 나서서 주주들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이번 주총에서는 주주환원 논의가 작년보다 올해 훨씬 더 활발했다"며 "기업들이 이제 변화를 시작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