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ETF 베끼기 방지안 적용 임박...삼성vs 미래 운용사 순위 바뀔까
입력 24.04.02 07:00
ETF 신상품 보호제도, 상장예심 거쳐 실적용 임박
갈 데 없는 유동성, ETF로…운용사간 경쟁도 치열
리츠 ETF 두고 삼성·미래 수수료 경쟁…감정 싸움도
올해 점유율 순위 역전될까…거래소 역량도 시험대
  • 한국거래소가 'ETF 베끼기'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ETP(상장거래상품;Exchange Traded Product) 신상품 보호제도 개선안의 실적용 시점이 다가오면서, 운용업계가 최초 적용 대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과에 따라 올해 ETF 시장의 절대 강자 삼성자산운용을 꺾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31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4월 중, 늦어도 5월 안에는 개편된 ETP 신상품 보호제도의 적용을 받는 1호 상품이 나올 전망이다. 한국거래소가 관련 개선안을 자본시장에 적용한 시점은 2월 1일이지만, 기준일이 상장예비심사 청구기일이기 때문이다. 통상 ETF 상장예심은 2~3개월 정도 소요된다.

    ETP 신상품 보호제도 개선안의 골자는 그동안 상품별 기초지수와 구성종목, 중복 비율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했던 기존의 제도를 정성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내부 관계자로 구성된 ETP 신상품 심의위원협의회에서 독창성, 창의성, 기여도 등을 항목별로 나눠 상품을 평가해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협의회를 통과한 상품은 신상품으로서 6개월간 보호받게 되며, 다른 운용사들은 해당 상품과 유사한 ETP 상품을 상장할 수 없다. 사실상 '6개월 독점권 제도'인 셈이다. ETP에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 등이 포함된다.

    개선안의 취지는 ETF 시장 경쟁 과열에 따른 ETF 베끼기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은 2022년 말 78조5116억원에서 이달 20일 기준 136조7369억원까지 성장했다. 오갈 데 없는 유동성이 ETF 시장으로 몰리면서, 운용사 간의 ETF 상품 베끼기 경쟁 역시 공공연해졌다.

    일례로 최근 상장한 비만치료제 ETF의 경우, 삼성자산운용이 지난달 14일 KODEX 글로벌 비만치료제 TOP2 Plus ETF를 상장한 이후 같은 달 27일과 29일, KB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도 유사한 상품을 출시했다. 세 상품 모두 글로벌 비만치료제기업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의 편입 비중이 50% 이상이다.

    이러한 양상은 운용사간 수수료 인하 출혈 경쟁과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이달 5일, 삼성자산운용은 KODEX 한국부동산리츠인프라 ETF를 신규 상장했다. 국내 인프라 자산과 상장 리츠에 분산 투자하는 부동산 ETF인데, 사실 관련 ETF의 원조는 지난 2019년 상장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 ETF다. 차별점이 있다면 삼성운용의 맥쿼리인프라 비중(24.56%)이 미래에셋운용(16.31%)보다 더 높다.

    삼성자산운용이 사실상 동일한 ETF를 출시하며 수수료 역시 국내 최저 수준인 0.09%를 제시하자,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이달 19일 수수료를 기존 0.29%에서 0.08%로 인하하며 맞불을 놨다. 이 과정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세부 종목에서 비중만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한 리츠 ETF를 삼성에서 수수료까지 대폭 낮춰 출시했기에 미래에셋 입장에선 짜증이 날만하다"며 "ETF 시장 성장세가 커지면서 운용사들 간의 수수료 경쟁도 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한국거래소가 ETF 베끼기 근절을 위해 칼을 빼들면서, 운용업계는 업계 1, 2위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주목하고 있다. 보호제도 개편안 적용 결과에 따라 두 운용사간 순위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순자산총액 기준 두 운용사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39.9%와 37%다.

    이미 운용업계 내부에서는 올해 안으로 ETF 시장 점유율 순위가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는데, 이번 보호제도 개편안이 그 시기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운용사가 독점적 신상품을 출시해 시장 파이를 가져가거나, 한국거래소가 특정 상품에 대해 삼성 혹은 미래에셋 둘 중 하나의 운용사에 독점적 권한을 부여해준다면 순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 개편안 실적용 결과에 따라 오히려 한국거래소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성 평가인 만큼 독창성 여부 평가 결과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항목별 세부 평가 기준도 공개하지 않고, 평가와 관련해 별도의 공시도 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져 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셀 전망이다.

    한 운용사 ETF 담당자는 "정성 평가라는 것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어 다들 어떤 운용사의 어떤 상품이 1호 적용 대상이 될 지를 주목하고 있다"며 "다만 거래소가 시장 관계자들이 납득할만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운용사들이 거래소의 결정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