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배상 논란이 만든 新풍경…"면책 보험 가입 돼 있나요?" 묻는 사외이사들
입력 24.04.04 07:00
라임사태부터 판매사가 투자자에 원금 전액 배상하는 일↑
자본시장법상 투자 손실 보전하면 '안돼'…이사회 배임 걱정
당국은 '배상해라' 기조 거세…면책 보험 범위 묻는 이사회
  • "최근 이사회는 예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금융당국이 투자상품 손실분을 판매사(금융사)가 갚아달라는 기조가 강한데, 사외이사들 설득이 만만치 않다. 회사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하면 사외이사들이 면책 보험은 돼 있냐고 묻는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 

    금융당국이 판매사에 투자 원금을 보상하라고 결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금융사에선 '웃픈'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투자자 배상을 최종 승인하는 이사회 이사들이 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방패막이로 회사에 면책 보험을 물어본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이 이사회에서 자율배상을 결의했고,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이사회를 거쳐 자율배상에 나서기로 확정했다. 배임 여지가 있어 난색을 보인 은행권이지만,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자 이를 따르는 분위기다. 

    은행 이사회에선 금융당국과 관계를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다'는 기류가 관찰된다. 법조계에서 은행권 자율배상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음에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앞장서 '문제 없다'고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사정기관과 관계가 틀어지면 향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판매사 배상'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H지수 ELS 상품의 경우에도 원금손실이 가능한 상품에, 절차를 통해 가입한 고객에게 손실을 배상해 주는 게 맞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다수 제기됐다. 자본시장의 근간은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자기책임 원칙인데 이를 회사가 과도하게 부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기조가 금융권에 불리해지면서 각 이사회 사외이사들이 '면책'에 신경 쓰는 모습이 포착된다. 회사가 가입한 임원배상책임보험 범위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투자자들로부터 제기되는 소송에 대응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회사 임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및 제3자에 대해 법률상의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됨에 따라 입게 되는 손해를 보상한다. 사외이사도 통상 포함된다. 

    특히 자율배상 등 배임에 해당할 수 있는 안건을 이사회에서 결의해야한다면 주주대표소송이 임원배상책임보험에 해당하는지가 관심사로 알려진다. 주주대표소송을 대비하기 위해선 특약을 별도로 가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사 사외이사 중 가입이 안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주주대표소송은 주주가 경영진의 행위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회사를 대신해 이사들에게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금융사의 투자 손실 보전 추세를 생각하면 사외이사는 주주대표소송 대응을 위한 특약 가입이 필수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언제든 배임에 해당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사에서 대부분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만, 주주대표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선 특약을 들어야 할 수 있다. 다만 가입한 즉시 보장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일정기간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