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와 신약개발 사이 딜레마…글로벌 PEF는 한미그룹의 '동아줄'일까
입력 24.04.17 07:00
취재노트
오너일가 분쟁 일단락됐지만 상속세 부담 여전
잇단 자금 조달 무산에…글로벌 PEF 등판 거론
기업가치·투자 조건·경영 방향 등 이견 가능성
그룹 정체성인 '신약개발' 지지 여부도 불투명
  • 한미약품그룹에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오너일가 내 분쟁은 일단 봉합됐지만 상속세 부담을 어떻게 해소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우군으로 거론되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회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신약개발 성과가 중요한데 투자 기한을 정해둔 PEF가 이 확률 낮은 사업에 힘을 실어줄지는 미지수다.

    지난 2020년 8월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가 보유했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이 부인 송영숙 회장과 자녀(임종훈·임주현·임종윤)들에 상속됐다. 유족은 지분 일부를 재단에 증여해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한편,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간 상속세를 나눠 내기로 했다.

    유족들은 환매조건부 주식매매계약, 주식담보대출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지만 매년 돌아오는 상속세 부담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유족들이 자본시장을 찾거나, 반대로는 자본시장에서 유족들에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작년엔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사장이 라데팡스파트너스에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으나, 인수자가 자금조달에 실패하며 없던 일이 됐다.

    송영숙 회장 모녀는 올해 들어선 OCI그룹과 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OCI그룹 지주사 OCI홀딩스가 모녀 측 지분 등을 인수하고, 임주현 사장 등이 OCI홀딩스 최대주주에 오르는 지분 맞교환 방식이다. ▲당시 한미사이언스 주가 대비 저평가된 수준에서 신주가 발행된 점 ▲재무구조 개선의 시급성 등이 없었던 점 ▲OCI그룹이 신약개발에 득이 되지 않는 점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임종훈·임종윤 형제 측이 승리하면서 OCI홀딩스와 통합은 없던 일이 됐다. 임종훈·송영숙 공동대표 체제가 되면서 갈등은 표면적으로 봉합됐다. 다만 화해라기 보다는 상속세 부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시선도 없지 않다. 그간 자금 조달을 위해 썼던 카드가 모두 무위로 돌아가면서 당장 이번에 돌아올 세금 부담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PEF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오너일가 측 지분은 상당 부분 금융사와 세무당국에 담보로 잡혀 있어 활용 여지가 많지 않다. 다만 글로벌 PEF가 지갑을 열면 오너일가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글로벌 PEF는 국내 유력 제약사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글로벌 PEF의 제약·바이오기업 투자 노하우가 접목될 수도 있다.

    글로벌 PEF와 한미 오너일가가 손을 잡기까지 걸림돌이 꽤 많다. 현재 상황에서 글로벌 PEF가 나서려면 한미사이언스에 후한 가치를 매겨야 하는데, '지금의 시장 가치가 적정하냐'는 의문이 적지 않다. 글로벌 PEF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도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정이 급한 오너일가가 금액이든 투자 조건이든 양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PEF가 한미사이언스에 투자한 후에도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자체는 오너일가가 당분간 맡게 되겠지만 글로벌 PEF 입장에선 투자 기한과 이익 목표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 성과나 주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한미약품그룹과 오너일가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신약개발'이다. 한국은 신약 개발 분야에서 세계의 변방으로 평가받지만 그나마 성과를 내온 곳이 한미약품그룹이다.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의 신약개발 의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고공행진했던 것도 라이선스아웃(기술수출) 성과에 기인한 것이다.

    다만 글로벌 PEF가 한미약품그룹의 신약개발 정체성을 얼마나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복합고혈압약 아모잘탄, 고지혈증약 로수젯 등에서 거두는 현금창출력을 신약개발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지만 세계 수준의 눈높이를 가진 글로벌 PEF에 크게 매력적일지는 의문이다. 성공 확률이 낮은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기존의 캐시카우를 더 키우는 편이 중단기적으로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합성약, 복제약에 의존하는 그저 그런 제약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임종윤 사장은 '독일 바이엘' 모델을 제시한 OCI그룹과 통합을 반대하며 '미국 애보트'를 미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코리그룹 등과 한미약품의 신약개발 역량을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주주총회를 전후해선 '스위스 론자'로 목표가 바뀌었다. 바이오의약품 사업을 강화해 수익성을 키우겠다는 의지지만 아직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비칠 여지도 있다.

    글로벌 PEF가 글로벌 변방의, 향후 성장 전략이 모호한 기업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투자심의위원회가 크게 호응하지 않거나, 의사 결정까지 시간이 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막대한 상속세와 오너일가 내 갈등 등 한국 시장 특유의 문제인 점, 시간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글로벌 PEF보다 국내 대형 PEF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나아 보이기도 한다.